⑥특전사 위법성의 단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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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코트워치는 내란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피고인 13인 그리고 증인 148인의 법정 발언과 행적을 통해 그날 밤 무엇이 ‘12·3 내란’을 시작하게 했고, 작동하게 했고, 멈추게 했는지 추적했다. 모든 내용은 재판 과정에서 드러난 기록을 바탕으로 했고, 관련자 직책은 2024년 12월 3일 기준으로 표기했다.



2024년 12월 3일, 곽종근(특전사령관)은 밤 9시 42분 육군특수전사령부 전투통제실에 입장했다. ‘전방 상황이든 뭐든, 뭐가 상황이 생기겠구나’ 생각하고 미리 움직였다. 곽종근은 비상계엄 선포 직전인 밤 10시 22분부터 부하들에게 전화를 걸어 지시를 내렸다. 1·3·9공수특전여단장에게는 “편의대(정찰조)를 국회 등으로 보내라”, 707특수임무단장에게는 “빨리 국회에 가야 한다”는 내용이다.

비상계엄 선포 이후, 참모들이 전투통제실에 순차적으로 도착했다. 곽종근은 비화폰으로 계속 통화를 했다. 법무참모 노재헌(특전사 법무실장)은 전투통제실에서 곽종근만 굉장히 바빴다고 기억했다.

노재헌: 통상적으로 훈련을 하게 되면 참모들이 파악해서 보고를 하고, 사령관님이 결심해서 지시를 다시 하고, 뭐 이렇게 되어야 하는데. 당시에는 참모들은 그냥 가만히 있었고, 사령관님만 그러니까 통제실 안에 있던 인원들과 소통하지 않고, 계속 외부랑만 소통을 하셨고.

(윤석열 공판, 2025. 11. 13. 증인신문)

참모들은 당시 벌어진 상황을 100%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했다.

박정환(특전사 참모장)은 “훈련대로 우리 군이 구축한 것들을 사용하지 않고, 사령관 비화폰에 의해 누군가로부터 전화를 받고 전화를 하고 이런 상황이었다”라고 말했다.

박정환: 많은 인원이 전투통제실에 있었음에도, 비화폰에 의해 출동하고 보고하는 어이없는 상황이었습니다. (…) 그날은 순리대로 돌아간 게 없는 그런 날이었습니다.

(군 사령관 공판, 2025. 10. 28. 증인신문)

곽종근은 평소보다 톤이 올라간, 상기된 목소리로 헬기와 병력 출동 상황을 지휘했다.1 사령관의 지시에 따라, 707특수임무단 부대원을 태운 헬기 12대가 3일 밤 11시 22분부터 43분 사이 차례로 이륙해 국회로 향했다.

특전사 707특수임무단 부대원을 태운 헬기 12대는 12월 3일 밤 11시 49분부터 4일 새벽 0시 11분 사이 차례대로 국회에 착륙했다. (출처: 국회방송)

대테러 특공대

2025년 9월, 윤석열(대통령) 내란우두머리 법정에 차폐막이 3번 설치됐다. 신원이 알려지면 안 되는 특전사 707특수임무단 군인 3명이 증인으로 왔기 때문이다.

비상계엄 당일 707특수임무단은 헬기 훈련을 준비했다. 저녁 8시 53분 소집 및 출동 준비를 완료했지만, 헬기가 뜨지 않아 늦어졌다.2 비상계엄 선포 직후인 밤 10시 31분,  훈련이 실상황으로 바뀌면서, 대기하던 부대원들은 국회 본청과 의원회관을 확보하라는 ‘국회 봉쇄’ 임무를 받았다. 해당 건물을 아무도 드나들 수 없게 하라는 의미다.

법정에 온 증인들은 처음 ‘테러’를 생각했다고 증언했다.

조OO: 처음에는 테러로 국회의원이나 국민이 위험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윤석열 변호인: 비상계엄 선포 내용을 들었나요?

조OO: 네. 종북세력 이런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윤석열 변호인: 어떤 생각을 했습니까?

조OO: 폭발물이든 뭐든 실제 위험 상황이 발생했다고 인지했습니다.

(윤석열 공판, 2025. 9. 8. 증인신문)

박OO: 테러 상황이 발생하고 그것에 따라 계엄이 발생했다고 생각했습니다.

검사: 누가 말해주지는 않았지만, 그렇게 짐작했다는 것이죠.

박OO: 네, 저희 본연의 임무이기 때문에.

검사: 만약 테러 상황이라고 하면 말해주는 게 통상적일 것 같은데 의문은 없었나요?

박OO: 당시 상황이 너무 급박했고, 그 임무만 부여받아서 행동해야 된다고 생각했습니다.3

(윤석열 공판, 2025. 9. 15. 증인신문)

하지만 작전 구체성은 떨어졌다.

국회로 출동했던 이OO은 “차단이라고만 했다. 평상시 저희 부대의 계획 수립 과정처럼 탄탄하게 세부 내용이 없었고, 이렇게 계획이 아무 것도 없이 차단만 하면 맞는 건가 생각했다”라고 증언했다.4 조OO은 “추가로 진술할 내용이 있느냐”는 검사 질문을 받고 이렇게 말했다.

조OO: 적의 상황과 지형, 인질이 몇 명 있는지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들어가도 죽을 수도 있는데, 준비가 되지 않은 상황에서 갔다고 생각하니 이게 실제 총기 사건이고 테러범도 있었다고 가정하면 저희는 수많은 인원이 전사했을 겁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고. 하지만 저희는 동일한 임무가 부여되더라도 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게 저희 707의 존재 이유이기 때문에.5

(윤석열 공판, 2025. 9. 8. 증인신문)

국회 본청 223호 유리를 깨고 진입한 계엄군. (출처: 국회방송)

YTN 뉴스

2024년 12월 4일 새벽 0시경, 조OO(특전사 707특수임무단 작전과장)은 지휘통제실에 있었다. 부대원을 한 차례 국회에 내려준 헬기가 돌아오는 중이었다. 조OO은 사령부에서 ‘너무 많은’ 전화를 받았다. “(추가 병력이) 언제 출발하느냐”는 재촉이었다. 이때도 이유는 밝히지 않고 그냥 보내라고 했다. 조OO은 지시에 따르면서 여러 번 화를 냈다.

조OO: 준비가 안 됐고 헬기가 오고 있는데. 기본적인 세팅이나 임무에 들어가려면 어떤 상황인지 (알아야 하고) 적이 있을 수도 있는 상황인데 자꾸 가라고만 하니까. 그때 정말 답답했습니다. 그렇게 가라고만 한다고 갈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윤석열 공판, 2025. 9. 8. 증인신문)

조OO이 ‘뭔가 잘못됐다’고 느낀 건 지휘통제실에 틀어둔 YTN 뉴스를 보고 나서였다.6 국회 대치 장면은 그의 예상과 달랐다. 의아했지만, 일단 병력을 보내라는 ‘급박한 오더’가 내려왔기 때문에 지시사항에 따랐다. 국회에서 돌아온 헬기 12대는 다시 부대원들을 태우고 4일 새벽 0시 29분부터 차례대로 이륙해 국회로 향했다.

YTN 실시간 뉴스는 특수전사령부 전투통제실에서도 소리 없이 송출되고 있었다. 뉴스에는 테러범은 물론, ‘국회 인질극’도, ‘무장공비’나 ‘총격전’도 나오지 않았다.7 707특수임무단이 본연의 임무와 다른 임무를 수행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사령관의 속도

곽종근(특전사령관)은 비화폰으로 계속 통화를 했다. 그런데 4일 새벽 0시 31분 통화는 조금 달랐다. 윤석열(대통령)의 두 번째이자 마지막 전화였다. 김용현(국방부장관)은 ‘하도 많이’ 전화를 걸어서 전부 기억하기도 어려웠지만, 윤석열 전화는 달랐다.

곽종근은 법정에서 “제가 그걸 어떻게 잊느냐”, “시간이 간다고 잊어지는 게 아니다”라고 항변했다.

곽종근: 이것도 트라우마 아닌 트라우마 같습니다. 지금도 TV 보면 그 생각이 계속 듭니다. 잠자다가도 생각이 듭니다. (윤석열이) 의결 정족수 얘기하실 때, YTN 화면을 같이 봤습니다. 국회의사당 의원들이 보이는 모습을 그때 같이 봤습니다. 제가 그거 어떻게 잊습니까?

(윤석열 공판, 2025. 10. 30. 증인신문)

2025년 10월 30일, 곽종근 전 특수전사령관이 증언하고 있다. (출처: 서울중앙지방법원)

윤석열과의 통화를 기점으로, 곽종근은 더 위험해지기 시작했다.

곽종근과 함께 전투통제실에 있던 김영권(파견된 방첩부대장)은 “(위 통화에서 곽종근의) ‘들어가겠습니다 답변’ 이전과 달리, 테이저건, 공포탄, 본회의장 강제 단전 이야기까지 나왔던 것으로 기억한다”라고 진술했다.8

법무참모 노재헌(특전사 법무실장)도 사령관에게서 어떤 ‘위험’을 감지했다.9 노재헌은 새벽 0시 3분쯤 전투통제실에 도착해 포고령부터 가져오라고 했다. 처음에는 북한과 관련된 사안이라고 생각했지만, 국회 정치활동 금지와 전공의 복귀 조항이 이상해 ‘검토가 필요하다’고 포고령 출력지에 메모한 상태였다.

노재헌은 통화를 마친 곽종근이 혼잣말처럼 “끌어내야 되는데”라고 말했고, 누군가와 통화를 하면서 “끌어내야 된다”, “테이저건” 같은 이야기를 했다고 기억했다.

검사: 증인이 당시에 그냥 두면 저 무기를 쓸 것 같다는 느낌을 받은 이유는 무엇입니까?

노재헌: 당시 보이는 뉴스 화면이 되게 좀 위험해 보였고, 자칫하면 무기 사용이나 물리적 충돌이 생기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윤석열 공판, 2025. 11. 13. 증인신문)

노재헌은 법무참모 라인을 따라, 육군본부 법무실장에게 무기 사용과 관련된 지침을 받고자 했다. 하지만 별다른 지침을 받지 못했고, 직접 곽종근에게 “무기를 사용하면 안 될 것 같다”, “비살상 무기라도 (사령관 권한이 아니라) 계엄사령관의 지침이 필요하다”고 건의했다.

국회 의결까지 수행한 임무

국회 본청 건물 유리창을 깨고 진입을 시도하던 무렵,10 김현태(특전사 707특수임무단장)도 곽종근으로부터 테이저건 이야기를 들었다. 김현태는 “무기 사용은 제한된다”라고 말했고, 곽종근도 이를 받아들여 포기했다. 이날 김현태는 소화기 분사를 두 번 당했다. 유리창을 깨고 진입한 2층 사무실에서 나왔을 때와 본회의장이 있는 3층의 좁은 복도에서 대치할 때다. 김현태는 곽종근에게 “더 이상 못 들어간다”고 보고하는 과정에서 전기 차단 이야기를 들었다. ‘전기(시설)는 보통 지하에 있으니까’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갔고, 지하 1층에서 비상계엄 해제 의결을 맞았다.

김현태는 국회 의결 때까지 임무를 수행했다.

그의 주장대로라면 ‘본청 봉쇄’ 임무를, 그에게 주어진 임무를 깊이 고민하거나 의심하지 않았다. 소화기를 분사하며 격렬하게 대항하는 이유를 판단하지 않았고, 테이저건전기 차단 등 갈수록 좀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았을 때도 ‘장관이나 계엄사령관이 사령관에게 뭔가 시키나?’ 정도로 생각했지, 구체적으로 고민할 여유는 없었다고 법정에서 말했다.

김현태: 돌아간다고 한들, 군통수권자와 장관과 사령관의 지시를 거부할 수 있는 건 아닌 것 같습니다. 좀 아쉬운 건 중간에라도 사령관에게 긴밀하게 물어보고 의논하고 하는 게 있었어야 하는데 저 역시도 문에 끼어 있고11 뛰어다니느라 전화도 잘 못 받았고. (…) 부대원들에게 고마운 게 부대원들이 잘해줘서 유혈사태가 안 났다고 생각합니다.

(윤석열 공판, 2025. 10. 20. 증인신문)

계엄군은 국회 본청 233호(국민의힘 정책위의장실)을 나와서 유리문을 열었고, 바리케이드를 친 국회 관계자들에게 소화기 분사를 당했다. (출처: 연합뉴스)

김현태와 마찬가지로, 곽종근의 지시를 받은 이상현(특전사 1공수특전여단장)도 비상계엄 해제 의결 직전까지 지시를 내렸다. 국회 현장에 출동한 부하 지휘관들에게 일반 휴대전화로 지시했기 때문에 그 내용이 녹음됐다. “본관으로 가서 의원들 다 끄집어내”, “대통령님이 문 부숴서라도 끄집어내오래” 같은 말이 고스란히 남았다.12

2024년 12월 4일 자정 전후, 특전사 1공수특전여단 1대대는 차량으로 국회에 출동했다. 이상현은 따로 지휘차량을 타고 갔다. 국회 정문 앞에 도착했지만, 군 차량을 알아본 시민들이 지휘차량을 막아서면서 도로에 갇혔다. 이상현은 시민으로 둘러싸인 차량 안에서 지시를 하달했다.



2025년 10월 28일, 중앙지역군사법원 재판부는 이상현에게 사령관 명령을 의심한 적은 없는지 물었다.

이상현은 “(근무했던) 접경지역에서는 상관이 가장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어 상관 명령에 따라야 작전 수행이 가능하다. 상관이 이런 상황에 대해 거짓말하는 건 상상도 못 한다”, “(처음에는) 시민들을 끄집어내야 하나 생각하다가, 국회의원들이 싸우고 있나 하다가, 대통령이 끄집어내라고 했다는 말을 듣고 이게 정치적인 문제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라고 대답했다.

이날 재판부는 비상계엄 당시 곽종근 옆에 있던 박정환(참모장)에게도 비슷한 질문을 했다.

재판장: 여러 단초들로 봤을 때, 수행하는 명령이 적법한가 의문이 들었을 것 같습니다. 증인은 특전사 임무들이 적법했다, 불법이었다, 아니면 의문이 들었다 세 가지 중에 어떤 생각으로?

박정환: 결론적으로 의문이 들었습니다.

재판장: 확실하게 불법인지는 모르고.

박정환: 네. 군이라는 것 자체가 지휘관과 부하의 상호 신뢰로 맺어진 집단입니다. 직속상관이 지시하고 확인시킬 때는 의문이 교차하지만, 직속상관의 지시대로 하는 것이 몸에 밴 습성입니다.

재판장: 의문이 들었음에도 상관의 지시이기 때문에 수행한 것이라는 건가요?

박정환: 네.

(군 사령관 공판, 2025. 10. 28. 증인신문)

군사법원 재판부의 지적처럼, ‘12·3 비상계엄’ 당시 육군특수전사령부에 내려진 명령에는 적법성을 의심할 수 있는 여러 ‘단초’가 있었다. 사령부 차원의 지휘가 체계적으로 이루어지지도 않았고, 전시가 아닌 평시에 부여할 만한 임무에 해당하지 않았고, 국회의원을 끌어내라는 이야기도 나왔다. 하지만 국회에서 비상계엄 해제 의결이 이뤄지기까지 그 단초들은 제대로 판단되지 않았다.

취재:
김주형 기자 jhy@c-watch.org
최윤정 기자 yoon@c-watch.org

카피 에디팅: 조연우

  1. 당시 곽종근과 함께 전투통제실에 있던 김영권(파견된 방첩부대장)은 “제가 기억하는 곽종근은 차분한 사람인데 그때는 흥분했고 목소리 톤도 올라가 있었다”고 증언했다. 김무학(특전사 주임원사)은 “(곽종근이) 많이 상기된 목소리로 지휘 통제를 하고 있었다”고 수사기관에 진술했다. (윤석열 공판, 2025. 8. 11. 증인신문과 증인신문에서 제시된 진술서 내용) ↩︎
  2. 김현태(특전사 707특수임무단장)와 김세운(특전사 특수작전항공단장)은 곽종근 지시를 받고 헬기 훈련을 준비했다. 이후 추가 지시가 없었기 때문에 헬기 12대도 그대로 대기했다. 곽종근은 12월 3일 비상계엄 선포 직전 김세운에게 전화해 “출동 준비 잘 하고 있으라”고 말했다. 비상계엄이 선포된 직후에는 김세운에게 “(특수전사령부로) 항공기 출동하라”, “너도 들어와라” 지시했다. ↩︎
  3. 박OO은 “다시는 이런 일에 저희 707특수임무단이 이런 피해를 보지 않았으면 좋겠고… 그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저희 707특수임무단 전 인원은 진짜… 단 한 번의 국가와 국민의 위험이 발생했을 때 목숨을 바쳐서 현장에서 임무 수행할 각오로 하고 있습니다”라고도 말했다. ↩︎
  4. 윤석열 공판, 2025. 9. 19. 증인신문. ↩︎
  5. 조OO은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마음이 좋지 않습니다. 이 사항 자체가 대통령과 국방부장관께서 당연히 모든 것들을 다 확인하고 이상 없으니까 우리에게 지침을 주고 지시를 해서 사령관부터 단장이 우리에게 국회로 가라고 했을 거라고 생각을 하는데, 며칠이 지나서 보니 정말 황당한 걸로 우리 707특수임무단을 국회로 보냈다는 게 지금도 마음이 아프고. 우리 특임단원들 가슴 속에 꺼내지 못한 상처가 너무나 많습니다. 이건 부대 사기와 연결되는 것이고”, “다시는 이렇게 우리 단의 명예가 떨어지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여기 계신 모든 분들과 국민들이 살펴주시면 좋겠습니다”라고도 말했다. ↩︎
  6. 조OO은 최초 출동한 지역대장의 전화를 받기도 했다. 조OO은 “(지역대장이) 한숨을 쉬면서 ‘도대체 우리가 여기 와서 뭐 해야 하느냐. 지금 내가 뭐 하고 있냐. 무슨 상황인지 모르겠다’ 물었습니다. 그래서 ‘저도 모르겠다. 현장에서 지시받은 걸로’…” (윤석열 공판, 2025. 9. 8. 증인신문) ↩︎
  7. 박정환(특전사 참모장)은 “YTN이 켜져 있는데, 부대가 헬기로 이동하고 진행되면 적어도 자막에 북한 국회 인질, 무장공비 장면이나 내용이 나와야 하는데, 시민들이 계속 운집하는 모습과 계엄 해제 표결 관련 자막이 뜨는 상황이었습니다. 뭔가 이상하다, 지금이면 북한 인질극이나 총격전, 총성이 들려야 하는데…” (군 사령관 공판, 2025. 10. 28. 증인신문) ↩︎
  8. 윤석열 공판, 2025. 8. 11. 증인신문에서 제시된 진술조서 내용. ↩︎
  9. 노재헌(특전사 법무실장)은 “사령관님이 누군가와 이야기하는 것들도 굉장히 위험해 보였고”라고 증언했다. (윤석열 공판, 2025. 11. 13. 증인신문) ↩︎
  10. 707특수임무단은 12월 4일 새벽 0시 32분 유리창을 깨기 시작했고, 38분에 233호로 진입했다. ↩︎
  11. 국회 본청 유리창을 깨기 전, 707특수임무단은 본청 정문을 확보하기 위해 건물 벽면을 타고 정문 쪽으로 밀고 들어가려고 시도했다. 김현태는 그 과정에서 밀려나 회전문에 끼어 있었다. ↩︎
  12. 이상현은 12월 4일 새벽 0시 30분 1대대장에게 “본관으로 들어가서 의원들 다 끄집어내”, 0시 31분 2대대장에게 “1대대와 2대대가 같이 의원들을 좀 이렇게 끄집어내”, 0시 49분 2대대장에게 “문짝 부숴서라도 의원들 끄집어내. 그 투표를 못하도록”, 1시 1대대장에게 “대통령님이 문 부숴서라도 끄집어내오래”라고 지시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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