⑦현장 지휘관과 시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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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코트워치는 내란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피고인 13인 그리고 증인 148인의 법정 발언과 행적을 통해 그날 밤 무엇이 ‘12·3 내란’을 시작하게 했고, 작동하게 했고, 멈추게 했는지 추적했다. 모든 내용은 재판 과정에서 드러난 기록을 바탕으로 했고, 관련자 직책은 2024년 12월 3일 기준으로 표기했다.



2024년 12월 3일 밤 10시쯤, 김의규(수방사 제1경비단 제35특수임무대대 제3지역대장)는 ‘출근해야 한다’는 당직사령의 전화를 받았다. 통화는 이후로도 여러 차례 이어졌다.

김의규: 아, 훈련입니까, 선배님?

당직사령: 실상황, 실상황.

김의규: 그런데 공포탄을 왜 가져갑니까?

당직사령: 몰라. 뭔 상황인지 모르겠어.

(2024. 12. 3. 22:15 통화 녹음)

김의규가 소속된 제35특수임무대대는 테러 상황에 투입하는 부대다. 공포탄을 지급한다고 들었기 때문에 김의규는 실제 테러는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1

출동을 준비하며 부대원들은 “진짜인가”, “실화인가”라는 말을 많이 했다. ‘그래서 우리의 임무가 무엇이고, 무엇 때문에 가야 하는가’를 서로 물었다. 김의규는 운전병 포함 부대원 15명과 함께 국회로 출발했다. 밤 11시 10분, 육군수도방위사령부 첫 출동이었다.

첫 번째 선발대

김의규는 이진우(수방사령관)에게 두 가지 지시를 받았다.2 경찰 협조를 받아 국회로 들어가서 본청에 출입하는 모든 인원을 통제하라. 양재응이라는 사람을 찾아서 도우라. 통제 수준과 범위가 어떻게 되는지, 양재응(국방부 국회협력단장)이 누구인지 등 구체적 내용은 빠져 있었다. 부대원들은 지시를 받고 네이버에 ‘국회의사당’과 ‘양재응’을 검색했다.

김의규는 일단 현장에 가서 판단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민간인과 관련된 임무, 경찰 능력을 초과하는 상황을 막연히 추측했고, 국회 일부를 통제하거나 경찰을 지원하게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당시 국회 정문 앞에는 경찰 외에도 시민들이 20~30명 서 있었다. 김의규는 ‘아무렇지 않게’ 경찰 협조를 받아 들어가려고 했다. 그런데 경찰이 있는 곳까지 15미터 정도를 남겨두고, 갑자기 시민들이 군인들을 붙잡기 시작했다. 팔다리를 잡아당기며 욕설을 하거나 몸으로 부딪쳤다.

김의규는 법정에서 “그당시에는 어떤 생각도 할 수가 없었다”고 증언했다.

검사: (시민들이 군인들에게 신랄한 비판과 심한 욕설을 했다는 증언에) 그러면 시민들을 상대로 분노하는 마음이 생겼나요?

김의규: 당시 동료들이 다칠까봐 그런 걱정이 더 컸던 것 같습니다. 시민들에 대한 분노는 없었고. 저희들은 절대 시민들을 해치거나 폭행하거나 물리력을 행사한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 저희는 오히려 피해를 당하라고 교육을 받습니다. 피하거나 도망가라고. 분노보다는 이 상황을 빨리 해소하고 떨어져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었던 것 같습니다.

검사: 그러면 왜 이런 계엄 상황이 되었는지 생각해봤나요?

김의규: 아닙니다. 저는 ‘왜’라는 생각을 못 합니다. 저는 참모가 없습니다. 저는 현장에서 움직이는 사람이고. 상급자, 지휘관, 참모들이 더 많은 정보가 있고, 작전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투입하는데, 그 일부라고 생각해서 들어갔지, 왜 계엄이 발생했고 이런 것까지 생각할 건 없었습니다.

(윤석열 공판, 2025. 8. 28. 증인신문)

12월 4일 새벽 0시 20분, 김의규는 이진우에게 상황을 보고했다. 이진우는 인적이 드문 곳으로 돌아서 담을 넘으라고 지시했다. 부대원들은 담을 넘어 국회 본청으로 향했다.

국회 본청 정문으로 진입을 시도하는 계엄군을 국회 직원과 시민들이 막아섰다. (출처: 국회방송)

“받은 임무가 시민들 인식과 차이가 있다”

김의규는 국회 본청과 도서관 사이에서 본청 출입구를 바라봤다. 기자와 시민이 많이 몰린 건물 정문으로는 들어갈 수 없다고 판단했다. ‘왜 들어가야 되느냐’는 부대원 질문에는 “아직 모르겠다. 현장에서 판단해야 한다”라고 밖에 대답하지 못했다. 후문으로 돌아서 들어가보려고 했지만 실패했다.

김의규는 조성현(수방사 제1경비단장)에게 국회 본청 상황을 계속 보고했다. ‘부대를 대표해서 나왔는데’ 사령관 이진우에게 전화해서 못 한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주어진 임무를 조정하거나 지원할 수 있도록 단장 조성현에게 상황을 보고했다.

김의규: 출입구(후문) 안쪽을 보니 책상과 의자로 막혀 있었고, 안에서 3명 정도가 그 책상과 의자를 잡고 막고 있었습니다. 707(특전사 707특수임무단) 병력 약 9명이 그 출입구 앞에 서서 소총 총구를 바닥으로, 일오로 서서 경계하고 있었습니다. 707 간부도 상황은 모르고 얼마나 부대가 오는지도 모른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내용을 모두 단장님(조성현)께 보고드렸습니다. 그랬더니 단장님이 한쪽에서, 민간인들 없는 곳에서 대기하라고…

(윤석열 공판, 2025. 8. 28. 증인신문에서 제시된 진술조서 내용)

조성현의 지시에 따라, 김의규는 빛이 닿지 않는 정원에 들어가 있으라고 부대원에게 지시했다.

김의규는 법정에서 ‘인식 차이’, ‘시각 차이’라는 표현을 썼다. 김의규는 자신들이 국회에서 수행해야 하는 임무와 그곳에 모인 시민의 반응이 일치하지 않는 상황을 목격했다. “이런 차이를 빨리 일치시켜야 한다”고 생각했고, 상급 지휘관이 판단할 수 있도록 상황을 알렸다.

이진우 변호인: 임무를 포기한 결정적인 이유는 뭔가요?

김의규: 적이나 폭동, 누군가를 해치는 큰 상황이 있으면 제재를 하고 막을 텐데 (시민들이) 아무리 봐도 밀고 당기기만 하고 있고, ‘들어가지마’ 이런 식으로 언쟁만 있어서. 위법하고 도덕적으로 상당히 어긋나는 행동하는 걸 못 봐서. 이대로 투입하다가는 지켜야 할 국민이나 부하가 다칠 것 같아서 포기했습니다.

(군 사령관 공판, 2025. 9. 16. 증인신문)

국회 경내에서 대기하던 김의규는 이후 특전사 병력이 국회에서 철수하는 모습을 보고 철수했다.3

김의규와 부대원들은 제35특수임무대대 선발대였다.

제35특수임무대대 후속부대 29명은 이날 새벽 0시 10분쯤 출발해, 0시 43분 여의도 공원 3주차장에 도착했으며, 29명 중 23명이 담을 넘어 국회로 진입했다. 김의규는 1시 23분쯤 후속부대를 만나 인원을 확인한 뒤 선발대와 같은 장소에 ‘숨겼다’.

계엄군이 국회 본청 후문 앞에 서서 경계하고 있다. 국회 관계자들은 후문 바로 안쪽에 바리케이드를 쳤다. (출처: 국회방송)

두 번째 선발대

2024년 12월 3일 밤, 김석진(수방사 제1경비단 제2특수임무대대 제1지역대 제1중대장)은 운전병 포함 부대원 10명과 함께 국회로 출동했다. 김석진은 이진우에게 본관 정문을 막으라는 지시를 받았다. 이진우는 “경찰한테 이야기하면 문을 열어줄 것”이라고 했다.

김석진은 버스를 타고 밤 11시 46분쯤 국회 정문 앞에 도착했다.

차벽으로 막힌 국회 앞에 경찰과 시민들이 있었다. 김석진은 경찰에게 ‘대테러초동팀’임을 밝히고 들여보내달라고 했다. 경찰이 확인을 위해 떠난 사이, 군 차량임을 알아본 시민이 몰려왔다. 시민들은 버스를 온몸으로 막았다. 버스 밑으로도 들어갔다.

김석진과 부대원들은 비상계엄 해제 의결까지 버스 안에 있을 수밖에 없었다.

시민들이 문을 열어 운전병을 끌어내려거나 버스에 올라타려고도 했기 때문에 문과 창문을 잠그고 커튼을 치고 시동을 껐다. 김석진과 부대원들은 개인 휴대전화를 반납하고 출동했다. 무전과 다른 통신장비로 제1경비단 내 소통은 가능하지만, 인터넷으로 뉴스 등을 확인할 수 없는 상태였다. 국회 의결도 시민들이 알려줘서 알게 됐다. 시민들은 “해제되었으니 돌아가라!” 소리쳤고, 휴대전화 메모장에 “계엄 해제됐으니 돌아가” 이런 문구를 써서 버스에 갖다 댔다.4

김석진과 부대원들은 제2특수임무대대 선발대였다.

제2특수임무대대 후속부대 51명은 12월 4일 새벽 0시 48분쯤 출발해 1시 4분쯤 서강대교 북단에 도착했다. 윤덕규(수방사 제1경비단 제2특수임무대대 제2지역대장)는 조성현에게 ‘국회로 이동하라’는 지시를 받고 서강대교 북단에서 출발했으나,5 1시 20분 ‘국회로 들어가면 안 될 것 같다’는 조성현의 전화를 받고 멈췄다.6 국회 의결 이후, 선발대도 서강대교 북단으로 이동해 후속부대를 따라 철수했다.

비상계엄 당시 시민들에게 갇힌 군 차량의 길을 터주는 일은 서울경찰청 64기동대가 맡았다.

64기동대는 버스와 함께 출동한 코란도 차량부터 빼려고 시도했지만, 실패했다. 64기동대장은 법정에서 “사람들이 군 차량을 이동하지 못하게 하려고 주변을 둘러싸고 바퀴 안으로 들어가고 어떻게든 움직이지 못하게 하려고 힘으로도 밀고. 저희도 차를 옮기려고 시민들을 떼어내려고 했지만, 시민분들이랑 저희랑 마찰만 생기고 조치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라고 증언했다.

64기동대장: 제 생각에 당시 시민들이 군 차량을 파괴한다거나 그런 목적이 있었던 것은 아닌 것 같았고, 다만 군 차량이 다른 곳으로 움직이지 못하게 하려는 목적이었던 것 같습니다. 만약 군 차량을 그대로 두면 또 다른 곳으로 가서 작전을 할까봐 시민들이 그걸 막은 것 같기도 한데 사실 이 부분은 제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조지호 외 공판, 2025. 12. 10. 증인신문에서 제시된 진술조서 내용)

64기동대는 길을 터주지 못하고 시민들과 계속 끼어 있었다.



2024년 12월 4일 새벽 1시 3분, 국회는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을 가결했다. 국회 앞 시민들은 가결 소식에 박수를 쳤고 소리쳐 환호했다. 겹겹이 에워싸고 있던 군 차량을 향해서는 ‘돌아가라’고 했다. 군 차량도 그제야 국회 앞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빠져나가는 군 차량을 지켜보며 서울경찰청 64기동대장은 ‘지금까지 우리가 도대체 무엇을 한 거지’라고 생각했다.7

취재:
김주형 기자 jhy@c-watch.org
최윤정 기자 yoon@c-watch.org

카피 에디팅: 조연우

  1. 김의규와 부대원들은 실탄이 포함된 ‘출동 패키지’와 공포탄을 가지고 출동했다. ↩︎
  2. 김의규는 3일 밤 11시 45분 여의도 공원에 도착했고, 2분 후인 11시 47분 이진우에게 전화해 지시를 받았다. ↩︎
  3. 이진우는 부인하지만, 조성현은 이진우에게 ‘국회의원을 외부로 끌어내라’는 지시를 받았다(기사 1편 참고). 조성현은 이 지시를 김의규에게 하달하지 않았다. 조성현 증언에 따르면, “할 수도 없고, 단독으로는 제한돼서 특전사령관과 소통해달라”고 이진우에게 건의했다. 이후 조성현은 이진우에게 ‘특전사가 나오면 길 터주는 것을 도우라’는 지시를 다시 받았고, 김의규에게 하달했다. (군 사령관 공판, 2025. 9. 16. 증인신문) ↩︎
  4. 김석진은 “저는 계엄과 테러 상황이 별개라고 생각했고, 저희가 테러 상황에 출동했다고 생각했다”고 증언했다. ‘테러가 아니라는 걸 언제 알았느냐’는 질문에는 “부대 복귀한 이후”라고 대답했다. (윤석열 공판, 2025. 9. 1. 증인신문) ↩︎
  5. 윤덕규는 “제가 ‘저희의 구체적인 임무가 무엇인지 알 수 있겠습니까’라고 물었더니, 단장님(조성현)께서 ‘국회 안에 있는 인원을 다 끌어내야 된다’라고 하셨다”고 진술했다. 법정에서는 “단장님 입장에서는 상황(끌어내야 하는 상황인 것 같다)을 설명해주셨을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제가 오해를 했을 수도 있지만, 저는 임무를 여쭤봤기 때문에 임무로 받아들였다”고 증언했다. (윤석열 공판, 2025. 9. 1. 증인신문) ↩︎
  6. 윤덕규는 “저는 당시 임무를 받았다고 생각해서 실패하면 혼이 날 것 같다는 생각이 있었다. ‘아닙니다. 이동하겠습니다’ 그랬더니 ‘이게 아니라니까!’ 호통을 치면서 ‘오면 안 된다니까. 근처에서 주차하고 대기해’ 이렇게”라고 증언했다. (윤석열 공판, 2025. 9. 1. 증인신문) ↩︎
  7. 조지호 외 공판, 2025. 12. 10. 증인신문에서 제시된 진술조서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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