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철학자가 ‘목적이 없는 행동은 없다’고 했습니다.”
대통령 윤석열을 대리하는 배진한 변호사가 지난 1월 16일 탄핵심판에서 한 말이다. ‘선거관리 시스템이 부실하게 돼 있다’면서 뒤에 깔린 ‘목적’을 의심했다.
배 변호사 의도와는 상관없이, 이 인용구가 귀에 꽂힌 이유가 있다. ‘12·3 비상계엄’ 직후부터 쏟아진 질문과 닿아 있기 때문이다. 대통령 윤석열은 왜 계엄을 선포했을까.
물론 윤석열은 ‘경고성 계엄’이라고 이미 대답했다. 지난해 12월 12일 대국민 담화에서 “(계엄의) 목적은 국민들에게 거대 야당의 반국가적 패악을 알려 이를 멈추도록 경고하는 것”이었다고 말한 바 있다.
직접 출석한 1월 23일 탄핵심판에서도 핏대를 세우며 같은 취지의 주장을 폈다.
“계엄 선포의 이유는 야당에 대한 경고가 아니고요. 주권자인 국민에게 호소해서 엄정한 감시와 비판을 해달라는 것이지, 야당에 대한 경고는 아무리 해봐야 소용이 없습니다. 야당에 대한 경고가 먹힐 거면 이런 비상계엄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주권자인 국민에 대해서 한 것이고요…”

그리고 대통령 대리인단은 지난 한 달간 ‘경고성 계엄’이라는 말을 퍼나르기 바빴다.
탄핵심판은 이들이 개발한 온갖 ‘수사’를 확인하는 자리였다. 경각심 계엄, 계몽 계엄, 충격요법 계엄, 엄포 계엄, 평화 계엄, 장난 같은 계엄, 반나절 계엄… 하지만 어떤 비유를 붙여도, 법을 잘 아는 대통령이 ‘경고’를 위해 계엄을 선포했다는 주장에 설득력이 생기지는 않았다.
결국 처음 질문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도대체 어떤 목적 때문에, 뭘 이루기 위해 윤석열은 비상계엄을 선포한 건가.
비상계엄, 실패 아니다?
비상계엄 목적을 ‘경고’로 만들려는 시도는 무리한 궤변으로도 이어졌다. ‘12·3 비상계엄은 실패하지 않았다’는 것. 처음 목적대로 진행됐다는 말이다.
윤갑근 변호사가 대표적이다.
기자: 윤석열 대통령께서 계엄의 실패를 예상하고 계엄을 시도하셨다고
윤갑근 변호사: 실패라는 표현은 맞지 않고요. (중략) 여러 가지 위기 상황이 좀 더 심각한 것을 알리고, 그것을 통해서 나라를 좀 더 반듯하게 만들려고 했던 것이고. 과정에서 지금 이런 혼란이 생겨서 이것이 극복되면 대통령의 계엄은 성공한다고 봅니다.
기자: 그러면 (국회에) 최소 병력이라든지 그런 걸 배치한 의도도 실패를 여지에 두고
윤갑근 변호사: 실패라는 개념이 아니라, 평화적 계엄이기 때문에 당연히 그렇게 가는 겁니다. 프로세스가 그렇게 설계가 된 것입니다.
(1월 9일 외신 간담회)
대통령 윤석열의 목적이 단순 ‘경고’였기 때문에 일부러 국회를 제대로 막지 않았고, 그래서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 가결이 가능했다는 주장이다. 결국 모든 과정이 윤석열의 ‘큰 그림’대로 진행됐기 때문에 비상계엄은 실패가 아니라는 것이다.
비상계엄 선포한 뒤 뭐 하려고 했나
대통령 윤석열의 계엄은 실패했다. 비상계엄의 ‘진짜 목적’을 이루지 못했다.
주요 근거는 ‘국가비상입법기구’의 등장이다. 1월 18일 서울서부지법 영장실질심사와 21일·23일 헌법재판소 탄핵심판에서 모두 국가비상입법기구 관련 질문이 나왔다.
탄핵심판 재판장인 문형배 헌법재판관은 21일 피청구인 윤석열에게 물었다.
문형배 재판관: 국가비상입법기구 관련 예산을 편성하라는 쪽지를 기획재정부 장관에게 준 적이 있으십니까.
최상목 기획재정부 장관(현 대통령 권한대행)은 비상계엄 선포 직전 대통령에게 ‘접은 종이’를 받았다고 지난해 12월 13일 증언했다. 이 문건에는 ‘예비비 확보’, ‘국회 관련 자금 완전 차단’, ‘국가비상입법기구 관련 예산 편성’ 등의 지시가 담겼다.
윤석열 대통령: 저는 이걸 준 적도 없고…
윤석열은 “이런 메모가 나왔다는 걸 기사에서 봤다”며 부인했다. 그러면서 “이걸 만들 수 있는 사람은 국방부 장관(김용현)밖에 없는데”라고도 했다.

1월 23일 김형두·이미선 헌법재판관은 증인으로 출석한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에게 물었다.
김형두 재판관: (‘최상목 문건’과 포고령 조항을) 종합해서 보면 결국은 가장 주된 목표가 입법기구인 국회의 기능을 정지시키겠다는 그런 의도가 있는 것으로 보이거든요.
이미선 재판관: 입법 권한을 실행할 기구를 아마 생각을 하신 것 같아요. 그게 5공화국 당시에 ‘국가보위입법회의’하고 같은 성격으로 보면 되겠습니까?
국가보위입법회의는 1980년 전두환 신군부가 설치한 임시 입법기구다. 국회를 해산한 뒤, 대통령이 임명한 입법의원으로 기구를 구성했다.
국회 자금을 임금까지 모두 차단하라는 문건, 국회 정치활동을 금지하는 포고령, 국가비상입법기구. 모두 비상계엄을 통해 국회를 무력화하려고 했음을 보여주는 정황이다. 윤석열 주장대로 ‘경고성 계엄’에 불과했다면 이런 구상이 나올 이유가 없다.


“앞으로 계엄 선포되면 ‘아무것도 아니구나’ 생각 들 것”
배진한 변호사는 탄핵심판에서 대통령을 ‘종이호랑이’, 비상계엄 선포를 ‘엄포’에 비유했다. 엄포는 알맹이 없는 말로 위협한다는 의미다.
“선택할 수 있는 건 ‘제발 국회 정신 차리라’고 엄포를 놓는 것밖에 없었습니다. 종이호랑이가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겠습니까.”
(1월 16일 탄핵심판)
이외에도 비상계엄 선포가 별것 아닌 것처럼 중대성을 감추고, ‘경고성 계엄’이라고 호도하는 말이 헌법재판소 심판정에 쏟아졌다.
“결과적으로 아무것도 발생한 것이 없는데. 국민들이 볼 때 장난 같은 그런 계엄이 왜 일어났는지…”
(1월 3일 탄핵심판, 배진한 변호사)
“국민들 다 저녁 드라마 보는 시간에 갑자기, 전 방송국이 다 대통령 얼굴이 나오면서 ‘계엄 선포한다’, ‘자 계엄 선포하니까 국회의원들 빨리 들어가서 계엄 해제 결의하라’, 그건 국회의원들한테 통보한 겁니다, 어떻게 보면. 그러니까 한 시간 반 만에 국회의원들이 정족수까지 몰려와 가지고, 뛰어와서 이 계엄을 해제한 것입니다.”
(1월 16일 탄핵심판, 배진한 변호사)
“모든 국민들이 계엄이라 그러면 총 쏘고 탱크도 밀려오고 학교도 못 가고 이런 상황이 벌어질 거라고 생각하고서 겁을 먹었는데. 아마 앞으로 계엄 선포되면 국민들이 ‘이거 아무것도 아니구나’ 생각이 들 겁니다, 아마.”
(1월 16일 탄핵심판, 배진한 변호사)
“처음부터 반나절 계엄이었고, 국민들의 경각심을 호소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중략) 국민들은 이 사건 비상계엄을 계몽령이라고 이해하고 있는데…”
(1월 23일 탄핵심판, 조대현 변호사)
“대통령이 ‘이번 계엄은 과거에 해왔던 비상계엄과는 다르다, 다르게 하고 싶다’라고 말하면서, 야당과 반국가세력에 대한 경종을 울리기 위한 충격요법이 필요하다는 차원에서 하는 것이니 최소한의 병력으로 국민들의 안전을 우선해서 해달라고…”
(1월 23일 탄핵심판 증인신문, 송진호 변호사)
뿐만 아니다. 윤석열 측은 비상계엄 직후 발표한 ‘포고령’에 담긴 조치도 ‘경고성 계엄’에 맞게 축소하려 애쓰고 있다. 1월 21일 탄핵심판에서 차기환 변호사는 “포고령은 계엄의 형식을 갖추기 위한 것이고, 집행할 의사가 없었고, 집행할 수도 없는 것이었습니다”라고 말했다.

“경고성 계엄은 헌법과 계엄법 어디에도 없다”
앞서 살펴본 대통령 대리인단의 ‘경고성 계엄’ 주장은 헌법을 위반했다는 ‘자백’과 다름없다. 헌법이 정한 대통령의 계엄 선포권은 ‘경고’나 ‘엄포’를 위한 권한이 아니기 때문이다.
방승주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지난 7일 열린 토론 발제문에서 이렇게 설명했다.
“경고성 비상계엄은 헌법과 계엄법 그 어디에도 없다. 이 주장은 이번 비상계엄이 헌법 제77조의 요건에 위반되는 것이었음을 피소추자(윤석열) 스스로가 자인하는 주장이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대통령 윤석열 탄핵심판의 쟁점과 전망’ 자료집 26쪽)
계엄은 ‘군대’를 동원하는 제도다.
군대는 경찰 같은 행정조직과 속성이 매우 다르다. 군대가 나서서 질서를 유지하거나 행정·사법권을 행사하면 국민 기본권을 침해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따라서 헌법은 군대가 사회 치안을 유지해야 할 때 예외적, 제한적으로 계엄 선포권을 인정한다.
계엄은 헌법과 계엄법이 정한 엄격한 요건하에서 선포해야 하며 ‘경고성 계엄’은 그 틀 안에 없다.
“(전시, 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는) 국가의 존립 자체 또는 입헌 체제에 직접적 위해를 가져오는 정도의 교란 상태를 말하며 모든 반정부적 활동을 비상사태로 규정해서는 안 된다. 이에 미치지 않은 긴급사태는 계엄 이외의 다른 수단에 의해야 한다.”
(법제처 발간 헌법주석서 551쪽)
1월 23일 이미선 재판관이 김용현 전 장관에게 물었다.
“이런 이유로 비상계엄을 선포할 수 있다고 생각을 하시는 거죠.” 여기서 ‘이런 이유’는 ‘거대 야당에 경종을 울리고, 부정선거 의혹의 실체를 확인하는 것’을 말한다.
김 전 장관은 이렇게 답했다. “대통령님이 판단하시기 때문에 대통령님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대통령 윤석열은 ‘이런 이유로 비상계엄을 선포할 수 있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는다. 윤석열과 대리인단은 비상계엄이 실패했다는 사실조차 인정하지 않은 채, ‘경고성 계엄’이라고 호도 중이다. ‘12·3 비상계엄 선포’의 ‘진짜 목적’이 무엇이었는지 가려내고, 역사에 남기는 일은 이제 사법부의 과제로 남았다.
최윤정 기자 yoon@c-watch.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