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치, 고장… 초기 대응 실패한 관제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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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2월 29일 제2경인고속도로 방음터널에서 화재가 발생해 5명이 사망하고 50명이 부상했다. 최초 화재가 발생한 화물차 운전자 등 5명이 이 사건으로 재판을 받고 있다. 코트워치는 이 사건 1·2심 공판기록을 입수해 살펴봤다. 수사 및 재판 과정에서 드러난 사고 당일의 상황, 피해가 확산된 총체적인 원인을 확인해 연속 보도한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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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3월, 국토교통부는 ‘도로분야 사회재난 위기대응 실무 매뉴얼’을 만들었다. 매뉴얼에 따르면, 고속도로 관제실 근무자는 화재를 감지한 직후 방재시설을 가동하고, 119에 신고하고, 상황을 보고·전파해야 한다. 초기 대응 조치는 10분 이내에 이루어져야 한다. 

하지만 2022년 12월 29일 발생한 제2경인고속도로 방음터널 화재 당시 이 매뉴얼은 무용지물이었다. 오후 1시 46분경 화재가 발생한 직후부터 15분간 터널 내 방재시설은 제대로 가동되지 않았다. 46대의 차량이 터널에 갇혔다. 차량 탑승자들은 1시 57분에서 2시 사이 마지막으로 대피했다. 5명은 터널을 빠져나오지 못했다. 2시 1분경 터널 내 전기가 완전히 끊겼다.

위험한 터널

문제의 방음터널은 도로 개통을 앞둔 2016년에 만들어졌다. 가볍고 저렴하지만, 화재에는 취약한 가연성 소재(PMMA, 아크릴)로 천장을 만들었다. 화재자동감지시스템, 비상시 대피를 돕는 유도등, 비상 대피 공간은 없었다. 

고속도로 건설을 위해 만들어진 특수법인 제이경인연결고속도로 주식회사와 도로를 위탁 운영·관리한 H사는 방음터널 사고에 대비한 훈련이나 교육을 하지 않았다.

화재 사고 이후 통행이 제한됐던 제2경인고속도로 삼막IC~북의왕IC 구간은 2023년 4월 16일 오후 5시부터 통행이 재개됐다. 화재로 약 600m의 터널이 소실됐다. (출처: 연합뉴스)

뒤늦게 화재 인지한 관제실

화재 당일 관제실에는 3명이 근무했다. 안전실장 A는 12년 동안 OO대교 등에서 고속도로 관제 업무를 한 경력이 있다. 화재 발생 3개월 전인 2022년 9월 H사에 입사했다. 상황조장 B는 5년간 제2경인고속도로 관리 업체에서 일했다. 그중 3년은 관제 업무를 했다. 상황조원 C는 2022년 5월 입사했다. 그전에는 대형마트에서 상품 검수 업무를 했다.

화물차에 불이 붙은 시각은 오후 1시 46분경, 관제실은 그로부터 3분이 지난 49분에 사고 발생 소식을 접했다. 우연히 터널을 지나던 시스템관리팀 직원의 전화를 받으면서였다. 관제실 직원 세 사람은 전화를 받은 즉시 CCTV 화면으로 사고 위치를 확인했다. 성남 방면 도로 3차선에 정차한 화물차에서 검은 연기가 올라오고 있었다. 성남 방면 터널 입구에서 190m 떨어진 곳이었다.  

관제실 직원들은 도로순찰팀에 무전으로 연락했다. 순찰차를 보내 화재 초기 진압을 지시했다. 순찰차는 사고 지점으로 가 터널에 진입한 차들을 우회시켰다. 방음터널 인근 갓길에서 대기하던 시스템관리팀 직원들도 합류해 차량을 통제했다. 화재가 발생한 성남 방면 도로에서는 피해가 발생하지 않았다. 

화재가 발생한 성남 방면 도로는 곧바로 통제됐으나 반대편에 있는 안양 방면 도로로 46대의 차량이 진입해 피해가 발생했다.

방치된 반대편 도로

문제는 성남 방면 도로 반대편에 있는 안양 방면 도로에서 발생했다. 

화재 발생 5분이 경과한 2022년 12월 29일 오후 1시 51~52분경 안양 방면 도로로 46대의 차량이 방음터널에 진입했다. 이 차들은 불길과 연기에 가로막혀 터널을 빠져나가지 못했다. 50분경부터 이미 터널 내부가 연기로 가득 차 시야가 확보되지 않았다.

사고가 난 방음터널은 양방향 터널이었다. 일반적인 터널은 단방향 터널이다. 주행 방향이 다른 두 도로가 콘크리트 벽으로 완전히 분리돼 있다. 방음터널은 성남 방면 도로와 안양 방면 도로를 모두 감싸고 있었다. 단방향 터널에서 화재가 발생하면 사고 발생 도로만 통제하면 되지만, 양방향 터널은 반대편 도로도 함께 통제해야 한다. 

관제실, 시스템관리팀, 도로순찰팀 직원들 모두 초기 대응 과정에서 방음터널이 양방향 터널이라는 사실을 고려하지 않았다. 사고 이후 재판에 출석한 업체 직원들은 “고속도로 사고가 발생하면 사고 발생 도로를 먼저 통제하는 것이 기본”, “(화재 당시) 안양 방면 도로는 생각도 안 했다”, “양방향 도로를 통제하려면 국토부나 윗선의 허가가 필요하다고 알고 있어 (통제)하지 않았다”고 진술했다.

1시 57분경 뒤늦게 안양 방면 도로로 투입된 직원 두 명이 터널 중간에 있던 비상문을 열어 차량 탑승자 대피를 도왔으나 5명은 끝내 빠져나오지 못했다.

화재 발생 당일 제2경인고속도로 CCTV 화면. 왼쪽이 안양 방면 도로, 오른쪽이 성남 방면 도로다. (출처: 경기도소방재난본부)

고장난 시스템

제2경인고속도로 관제실에는 LCS(차로이용규제신호등)·VMS(터널입구정보표지판)로 구성된 교통정보 전광판, 터널 내부 비상방송 설비, 터널 진입을 막는 차단막(‘진입 금지’라고 적혀 있는 현수막), 연기를 바깥으로 내보내는 제트팬(제연 설비) 등 터널 내 방재시설을 가동할 수 있는 원격 시스템이 갖추어져 있었다. 

1) 교통정보 전광판

상황조원 C는 1시 50분부터 약 3~4분간 119에 신고 전화를 했다. 연결이 잘 되지 않아 신고에 긴 시간이 소요됐다. 전화를 마친 54분경 사고 지점에서 6km가량 떨어진 다른 터널 전광판에 ‘전방 7km 화재발생 전 차로 차단’ 문구를 띄웠다. 56분에는 방음터널 내부 전광판에 ‘X감속X’ 문구를 띄웠다. 두 문구 모두 성남 방면 도로에만 표출됐다. 

C는 방음터널에 갇힌 차량과 무관한 위치에 사고 정보를 표출했다. 안전실장과 상황조장은 C가 어느 위치에 사고 정보를 표출했는지 확인하지 않았다. 사고 이후 재판에 출석한 C는 화재 지점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터널 전광판에 문구를 띄운 이유를 묻는 질문에 “해당 전광판 화면이 큰 편에 속해서 가장 잘 보일 거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터널 방재시설의 예시(사고 터널과 무관). 상단 이미지는 터널 입구에 터널 사고 발생을 알리는 VMS(터널입구정보표지판)를 띄운 모습, 하단 이미지는 차단막까지 내려온 모습이다. (출처: 서울시 시설관리공단 도로시설처)

2) 비상방송

상황조장 B는 1시 50분경 비상방송 송출을 시도했으나 실패했다. 터널 비상방송은 원격 시스템에 접속한 뒤 터널 이름이 적힌 버튼을 누르고, 어떤 사고가 발생했는지 선택하면 자동으로 대피 안내 음성이 방송되는 방식으로 작동된다. 

화재 당일 B가 시스템에 접속했을 때는 오류가 발생해 방음터널 버튼이 누락돼 있었다. 비상방송 송출을 담당하는 관제실, 설비를 관리해온 시스템관리팀은 비상방송 시스템에서 오류가 자주 발생한다는 사실을 알면서 방치했다. B는 오류가 발생했을 때 해결하는 방법을 몰랐다. 결국 화재 당일 터널 내 비상방송은 송출되지 않았다.

3) 차단막과 제트팬

차량 터널 진입을 막는 차단막과 터널 내 연기를 바깥으로 내보내는 제트팬은 관제실이 아닌 터널관리팀이 가동했다. 사고 이전에도 비상 상황이 발생하면 3층에 있던 터널관리팀 직원이 2층 관제실로 내려와 시스템 접속 후 설비를 작동했다. 

화재 당일 차단막이 제 기능을 하기 위해서는 안양 방면 도로로 피해 차량이 진입한 51분 이전에 작동해야 했다. 

터널관리팀 직원은 53분경 관제실이 아닌 타 부서 직원의 연락을 받고 사고를 접했다. 54분경 관제실에 도착해 55분에 제트팬을 가동했고, 2시가 다 돼서야 일부 차단막을 원격으로 작동했다. 이미 46대의 차량이 터널에 갇힌 뒤였다.

   

   

김주형 기자 jhy@c-watch.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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