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이 된 고속도로’… 과천 방음터널 화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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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2월 29일 제2경인고속도로 방음터널에서 화재가 발생해 5명이 사망하고 50명이 부상했다. 최초 화재가 발생한 화물차 운전자 등 5명이 이 사건으로 재판을 받고 있다. 코트워치는 이 사건 1·2심 공판기록을 입수해 살펴봤다. 수사 및 재판 과정에서 드러난 사고 당일의 상황, 피해가 확산된 총체적인 원인을 확인해 연속 보도한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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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제실 한쪽 벽면을 채운 40개의 모니터에는 고속도로 곳곳에 설치된 CCTV 화면이 번갈아 송출됐다. 20초마다 화면이 바뀌었다.

근무자 중 모니터를 정면으로 마주하는 자리에 앉은 사람은 상황조장과 상황조원 두 사람이었다. 관제실 책임자인 안전실장은 CCTV 화면을 좌측에 두고, 두 근무자의 책상과 관제실 입구가 눈에 들어오는 위치에 앉아 근무했다.

2022년 12월 29일 오후 1시 46분경.

방음터널 내부를 비추는 20번 CCTV 화면에 한 화물차가 정차하는 모습이 잡혔다. 관제실에서는 아무도 그 화면을 보지 못했다.

화면 속 화물차에서 내린 중년 남성은 차에서 작은 소화기를 꺼냈다. 차량에서 발생한 불을 끄려는 듯 소화기를 분사했지만, 이내 불길이 차체 위까지 치솟았다. 검은 연기가 도로 위에 퍼졌다. 

이때까지도 관제실은 20번 화면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알아채지 못했다. 가장 직급이 낮은 상황조원만 40개의 모니터 중 어딘가 이상한 화면이 있다는 걸 인지했다. 언뜻 뿌옇게 보이는 화면이 있어 역광 때문에 생긴 빛 번짐이라고 생각했다. 20초 뒤에 다시 확인해 봐야겠다고 생각한 찰나에 전화기가 울렸다.

2022년 12월 29일 1시 49분경 촬영된 방음터널 내 현장 CCTV 녹화 영상. 화물차에서 검은 연기가 올라오고 있다.

        

1시 49분경. 청소 작업을 위해 방음터널을 통과하던 타 부서 직원이 터널 내에서 화재가 발생했다는 사실을 관제실에 알렸다. 

관제실은 화재 발생 후 3분이 지나고 있을 때 CCTV 화면에 잡힌 상황을 최초로 확인했다. 이미 검은 연기가 터널 내부에 퍼지고 있었다.

화재가 발생한 과천시 갈현동 제2경인고속도로 방음터널 구간 (출처: 연합뉴스)

고립된 차량 46대

2022년 12월 29일 제2경인고속도로 방음터널에서 발생한 화재 사고로 5명이 사망했다. 50명은 대피 과정에서 화상, 연기 흡입 등 부상을 입었다. 터널 내에 고립된 차량 46대가 전소됐다. 600여 미터의 터널이 불에 타 뼈대만 남았다.

화재는 오후 1시 46분경 터널을 지나던 화물차에서 시작됐다.

방음터널은 6차선 양방향 도로 전체를 감싸고 있었다. 화재가 난 고속도로는 안양-성남 구간으로 화재가 발생한 쪽은 성남 방면, 반대편은 안양 방면이었다. 1시 50분경에는 연기가 안양 방면 도로까지 퍼졌다. 

사망자와 부상자 모두 안양 방면 도로에서 나왔다. 제2경인고속도로를 위탁 운영, 관리하는 도로관리업체는 화재 발생을 인지한 직후 성남 방면 도로만 통제했다. 1시 51분에서 52분 사이 안양 방면 도로로 진입한 차량은 터널을 빠져나오지 못했다. 

1시 57분에서 2시 사이 가까스로 차에서 하차해 터널 밖으로 나온 사람들은 이후 수사 과정에서 “검은 연기로 시야 확보가 되지 않는 상황에서 대피하는 사람들을 보고 뒤늦게 차를 두고 대피하게 됐다”고 증언했다. 이날 터널 안에서 대피를 안내하는 비상방송은 나오지 않았다.

화재 사고 당일, 원희룡 당시 국토교통부 장관은 제2경인고속도로 교통관제센터를 방문해 인명 구조 및 피해 상황을 보고받고 사고 수습을 지시했다. (출처: 국토교통부)

화재 원인과 과실

수사기관은 화재 발생 및 피해 확산 책임이 관제실 직원 3명과 화물차 운전자, 화물차 소유 업체에 있다고 봤다. 

관제실 직원 세 사람의 과실은 두 가지다. 화재 발생 사실을 적시에 파악하지 못한 것, 화재 발생을 인지한 직후 방음터널 내 방재시설을 제대로 가동하지 않은 것이다. 사고 당일 비상방송과 터널 진입 차단막 등 방재설비가 제때 작동되지 않았고, 터널 내 연기를 바깥으로 내보내는 환기장치도 제대로 가동되지 않았다. 수사기관은 그 책임이 관제실에 있다고 봤다.

제2경인고속도로 위탁 운영 및 관리 업무를 총괄하는 통합운영단장(도로관리업체 소속)도 피의자로 입건됐으나 검찰 수사 단계에서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화재 대응 조치가 미흡했다는 사실을 제때 인지하기 어려웠을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화재가 발생한 화물차는 폐기물 집게 차량이었다. 수사 과정에서 해당 화물차가 과적을 위해 불법 개조한 차량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13년 된 노후 차량으로 2020년과 2021년에 이미 두 차례 화재가 발생한 적이 있었다. 운전자는 이 사실을 알고도 과적 운행을 지속하다 사고가 났다.

수사기관은 화물차 운전자가 초기 대응을 제대로 하지 않아 화재가 커졌다고 봤다. 사고를 알리고, 피해 확산을 막기 위한 조치를 충분히 취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운전자에게도 과실이 있다고 판단했다.

관제실 직원 세 사람은 업무상과실치사상 혐의로, 화물차 운전자는 자동차관리법 위반과 업무상과실치사상 혐의로 기소됐다. 화물차 소유 업체와 업체 대표도 자동차관리법 위반 혐의로 재판을 받았다. 관제실 책임자이던 안전실장은 도주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구속됐다.

책임자 수사와 별개로 방음터널 소재 및 구조를 두고도 문제가 제기됐다. 방음터널에 가연성 자재를 사용했고, 터널 내부에 대피로·유도등을 설치하지 않았으며 환기 설비를 가동해도 연기가 잘 빠지지 않는 문제가 있었다. 이 모든 것을 규제하는 안전 기준이 없다는 점도 사고가 커진 원인으로 지목됐다.
     

     

김주형 기자 jhy@c-watch.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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