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코트워치는 내란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피고인 13인 그리고 증인 148인의 법정 발언과 행적을 통해 그날 밤 무엇이 ‘12·3 내란’을 시작하게 했고, 작동하게 했고, 멈추게 했는지 추적했다. 모든 내용은 재판 과정에서 드러난 기록을 바탕으로 했고, 관련자 직책은 2024년 12월 3일 기준으로 표기했다.
내란 사건 경찰 피고인 4명의 1심 선고일은 2월 19일이다. 조지호(경찰청장)와 김봉식(서울경찰청장), 윤승영(경찰청 국가수사본부 수사기획조정관), 목현태(서울경찰청 국회경비대장)는 내란중요임무종사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겨졌다. 12·3 비상계엄 당일, 경찰은 정당한 출입 권한을 가진 사람들을 막고 계엄군을 국회로 들여보냈다. 국군방첩사령부가 주도한 체포 ‘준비’에도 협조했다.
조지호는 “개인적으로 불가능할 거라고 봤던 비상계엄이 실제 발령이 됐고, 당황스러운 상황에서 제가 할 수 있는 건 그동안 제가 경험한 것에 기초해서 일을 하는 것밖에 없었다”라고 항변했다.
조지호: ‘일반인도 다 알 수 있는 수준의 명백한 위헌·위법인데 경찰청장이나 돼서 왜 몰랐느냐’라고 말씀을 하시는데. 결과적으로 그렇게 됐다면 제가 참 드릴 말씀이 없지만, 그당시에 정말로 얼마나 많은 공무원들이 비상계엄과 포고령이 명백히 위헌·위법이라고 판단했을지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윤석열 공판(병합), 2026. 1. 13. 마지막 진술)
변호인은 마주 앉은 검사들에게 목소리를 높였다.
조지호 변호인: 12월 3일 그때 계엄이 명백하게 위헌이라는 걸 모든 일반 국민도 알 정도였다면, 여기 앉아 계신 검사님들 그날 저녁에 뭐 하셨습니까? (…) 대검으로 달려가서 대통령 체포 건의하거나 명백한 위헌임을 선언해야 된다고 건의한 사람 있습니까? 궁금합니다.
(윤석열 공판(병합), 2026. 1. 13. 마지막 변론)
2024년 12월 3일 저녁, 조지호와 김봉식은 서울 삼청동 안전가옥에서 윤석열(대통령)을 만났다. 윤석열은 “오늘 비상계엄을 선포하겠다” 말했고, 두 사람이 그 말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와는 상관없이, 실제로 선포했다. 이후 경찰은 윤석열의 지시를 포함해, 여러 ‘협조’ 요청을 판단해야 할 상황에 놓였다.

경찰청장의 판단
조지호는 경찰청 집무실에서 계엄사령관 박안수(육군참모총장)의 전화를 받았다. 밤 11시 22분, 박안수가 김용현(국방부장관)의 비화폰으로 전화했다.
여기서부터는 조지호의 증언 내용이다. 박안수는 “국회를 통제해달라”고 했고, 조지호는 “법률적 근거가 없어서 안 된다”고 대답했다. 박안수는 국회 활동을 금지하는 ‘포고령’ 이야기를 했고, 조지호는 “포고령을 보고 판단하겠다” 대답했다.
박안수의 말은 다르다. 단지 포고령 발령 사실을 알려주기 위해 전화했고, ‘국회 통제’가 아니라 안전을 위한 ‘경찰 증원’을 요청했다고 증언했다.1
전화를 끊은 조지호는 언론에 보도된 포고령을 확인했다.
그리고 포고령에 따른 국회 통제를 결정했다. 곁에 있던 임정주(경찰청 경비국장)는 서울경찰청에 경찰청장 지시를 하달했다. 조지호는 “임정주와 포고령에 대해 논의한 기억이 있다”라고 진술했지만, 임정주는 부인했다.2 조지호는 “제가 최종적으로 판단했다”고 입장을 정리했다.
조지호: 경찰청장은 독립된 행정기관입니다. 무슨 위원회를 거쳐야 되는 그런 게 아니고. 그리고 어떤 결정을 할 때 경찰청의 경우에는, 정책을 결정하는 경우도 있지만, 이런 경우의 상황 판단은 청장이 아주 빠른 시간 안에 독자적인 판단을 하는 겁니다.
(윤석열 공판, 2025. 12. 29. 증인신문)
조지호는 윤석열 전화도 받았다. 윤석열은 밤 11시 15분, 20분, 28분, 30분, 34분 조지호에게 전화를 했다. 조지호의 증언에 따르면, 윤석열은 강한 어조로 일방적인 지시를 했다. 윤석열은 “조 청장, 국회에 들어가려는 국회의원들 다 체포해. 잡아들여. 불법이야. 다 포고령 위반이야” 같은 말을 반복했다.3
조지호는 체포 지시를 묵살했다.

서울경찰청 참모들
서울경찰청 상황은 조금 더 복잡했다.
포고령에 따른 국회 통제 지시가 내려오기 전, 경찰은 국회의원 등 국회 출입 권한이 있는 사람을 일시적으로 들여보냈다. 밤 11시 6분부터 11시 37분까지의 일시 출입은 서울경찰청 건의에 따른 것이었다. 서울경찰청 상황실에 모인 참모들이 “국회의원까지 출입을 차단하는 건 문제가 있다”라고 건의했고, 김봉식과 조지호가 받아들였다.
오부명(서울경찰청 공공안전차장)은 임정주에게 포고령에 따른 국회 통제 지시를 전달받았다. 오부명은 “현장에서 의원들 출입 어떻게 하는지 문의가 계속 들어온다. 본청에서 다시 검토해달라”고 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4
서울경찰청 간부들은 포고령을 두고 의견을 주고받았다.
김봉식: 포고령이 생소한 것이었기 때문에 참모들이 다들 궁금해하면서 ‘포고령을 따라야 되느냐, 말아야 되느냐’ 각자 의견을 조금씩 개진하고 있을 때, 법률 전문가 출신 참모(생활안전차장)가 “비상 상황에서 법적 효력이 있다” 이렇게 말했고, 그 부분에 대해서 다른 참모들도 그 이후에는 특별한 의견이 없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윤석열 공판, 2025. 11. 27. 증인신문)
오부명: 그후 생활안전차장이 와서 “준법률적 성격이 있다”고 설명을 했는데, 본청 법무과장 출신이니 더 의견을 낼 수는 없었고 분위기가 조용해졌습니다.5
주진우(경비부장): (위헌·위법을 지적하며 따르면 안 된다는 참모가 있었나요?) 없었습니다. 특히 포고령 1번(정치활동 금지) 관련해서 출입 차단이 맞는지 서로 의견을 나누는 정도였고, 그 와중에 생활안전차장이 정리했습니다.
(조지호 외 공판, 2025. 3. 31. 증인신문)
임경우(수사부장): (국회의원 등의 출입을) 일시 허용한 상태가 계속 유지되기를 바랐습니다. (…) 재차 통제가 됐을 때, 계속 강하게 말씀드리지 못하고 한 게 가장 후회되는 부분입니다.
(조지호 외 공판, 2025. 9. 17. 증인신문)
상황실에서 ‘효력’에 대해 말한 최현석(서울경찰청 생활안전차장)은 변호사 자격이 있다. 최현석은 “‘포고령이 법률에 준한다’는 항목이 기억나서 러프하게 ‘긴급한 상황이면 대통령 지시가 법률에 준하는 효력이 있지 않겠느냐’라고 말한 것”이며 “포고령을 따라야 한다고는 하지 않았다”고 방어했다.
김봉식은 “최종적인 판단과 지휘는 제가 했다”고 정리했다.
김봉식: 상급청에서 명시적인 지시가 내려왔고 그 이면에는 나름 포고령에 대해서 법적 검토를 하지 않았나 이런 생각도 있었기 때문에 최종적인 결정은 제가 한 것입니다.
(윤석열 공판, 2025. 11. 27. 증인신문)

밤 11시 37분, 포고령에 따른 국회 통제 지시가 내려갔다. 경찰기동대와 국회경비대는 지시에 따라 움직였다. 출입 권한이 있어도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국회에 들어갈 수 없는 상태가 다음 날 새벽 1시 45분까지 이어졌다.6 반면, 계엄군의 국회 진입에 대해서는 경찰 협조가 이뤄졌다. 김봉식과 이진우(수방사령관)가 통화한 결과다.
2025년 11월 27일, 김봉식은 증인으로 출석한 법정에서 울컥하는 모습을 보였다.
김봉식: 많은 국민들과 제가 오랫동안 몸 담았던 조직에 진심으로 미안한 마음입니다. 계엄이라는 상황이 일반적인 치안 상황이 아닌, 초유의 급박한 상황이다 보니까 제가 좀 더 체계적으로 사려깊게 판단하지 못한 부분에 대해서 많이 후회가 되고. 또 그 부분에 대해 책임을 지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됩니다. 단 하나 마음에 걸리는 것은 사실 현장에 출동한 직원들은 지시에 따라서 기계적으로 움직였다고 생각됩니다. 그런 직원들에게 법적인 그런 제재가 가해지지 않기를 간절히… 예. 이상입니다.
(윤석열 공판, 2025. 11. 27. 증인신문)
취재:
김주형 기자 jhy@c-watch.org
최윤정 기자 yoon@c-watch.org
카피 에디팅: 조연우
- 박안수는 “국회라는 말은 진짜 기억이 안 나고 경찰 증원 이런 톤의 이야기가 있었다는 기억이 (있습니다)”, “경찰이 가서 국민들하고 군하고 안 만나게 하고 이렇게 하면 피해가 없지 않냐는 이야기를 했습니다”라고 증언했다. (윤석열 공판, 2025. 12. 22. 증인신문) ↩︎
- 임정주는 “변호인께서는 자꾸 청장님과 제가 논의를 했을 것으로 추정해서 말씀을 하시는데, 추정 말씀은 부적절한 것 같고요. 만약 그분이 논의를 하겠다고 하면 법적으로 좀 더 자격이 있는 법무담당관실이라든지 국관회의, 전체 소집해서 회의를 하겠지, 비상업무 담당하는 저한테만 상의한다는 건 적절하지 않은 상황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청장님은 그전에 대통령님 등으로부터 그런 지시를 수시간 전에 받았던 상황 아니겠습니까. 몇 시간 동안 많은 생각과 판단을 하셨을 것 같고요. 그걸 경황도 없이 막 도착한 경비국장 하나와 상의한다는 건 무리하신 판단 같습니다”라고 증언했다. (조지호 외 공판, 2025. 4. 7. 증인신문) ↩︎
- 윤석열의 변호인은 ‘윤석열의 기억은 다르다’고 주장했다. “(조지호가) ‘질서유지 차원으로 일단 국회 게이트를 닫았다가 서울경찰청에서 검토를 해보니 국회의원과 국회 관계자는 들여보내는 게 법적으로 맞다고 해서 신분을 확인하고 들여보내고 있답니다’라고 해서 (윤석열이) ‘당연히 그렇게 해야지, 잘했다’라고…” (윤석열 공판, 2025. 12. 29. 증인신문) ↩︎
- 오부명은 임정주에게 “국회의원 출입 다시 차단하는 게 헌법에도 맞지 않는다”라고도 말했다고 진술했지만, 임정주는 “출입 통제에 대해 국회나 사무처 측에서 항의가 많다는 취지의 전화를 받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헌법, 위법성 말하면서 재검토해달라 이런 건 아니었다고 기억하고”라고 증언했다. (조지호 외 공판, 2025. 3. 31. 증인신문) ↩︎
- 조지호 외 공판, 2025. 3. 31. 증인신문에서 제시한 진술조서 내용. ↩︎
- 국회가 전면 통제된 시간대에 국회경비대가 일부 국회의원과 국회사무처 직원을 들여보내기는 했다. 자세한 내용은 다음 기사를 참고하면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