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코트워치는 내란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피고인 13인 그리고 증인 148인의 법정 발언과 행적을 통해 그날 밤 무엇이 ‘12·3 내란’을 시작하게 했고, 작동하게 했고, 멈추게 했는지 추적했다. 모든 내용은 재판 과정에서 드러난 기록을 바탕으로 했고, 관련자 직책은 2024년 12월 3일 기준으로 표기했다.
여인형, 이진우, 곽종근 등 군 사령관의 내란 혐의에 대한 재판은 지난해 1월에 시작됐다.
사령관 재판 과정은 둘로 나뉜다. 계엄 선포 전까지의 사전 모임 및 준비 과정에 관한 부분과, 계엄 당일 각 군에서 이뤄진 지시 이행에 대한 부분이다. 사령관들은 “계엄 전후 상황에서의 판단과 행동에 대해 온전히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1”고 입장을 밝히는 한편, 군 지휘관에게 내린 구체적인 지시 사항, 사전 모임에서 오고 간 대화 내용 등에 대해 ‘자신이 기억하는’ 사실을 입증하고자 했다.
재판에서 나온 주요 발언, 관련 증인에게 질문한 내용의 취지 등을 중심으로 군 사령관들의 계엄 상황 판단과 각 혐의 관련 주장을 정리했다.
“이 상황이 확대가 되면 계엄까지 갈 수가 있다”
2024년 12월 계엄 선포 전까지 군 사령관들은 여러 차례 윤석열(대통령), 김용현(국방부장관)과의 식사 자리에 참석했다. 곽종근(육군 특전사령관)은 지난해 4월 30일 공판에서 ‘10월 모임부터 비상대권, 특별한 방법 등이 언급됐다’고 증언했다.
군검사: 이렇게 자주 식사한 이유가 뭐라고 생각했나?
곽종근: 6월 17일은 친목 성격이 강했던 것 같고, 그 이후에는 병력 그리고 (12월) 3일 상황들과 연계돼 있는 거라고 이해했다.

2024년 11월 9일 모임에서는 군의 대비태세를 점검했다. 김용현이 사령관들에게 통합적인 군의 대비 상황에 대해 ‘한 마디씩 해보라’고 했고, 곽종근은 “특전사는 1·3·9여단 등 예하대대 준비태세를 잘 유지하겠습니다”라고 답했다.2
군검사: 대비하라는 말씀을 들으셨고 오물풍선 예의주시하고 계셨는데 ‘비상계엄 선포될 수도 있겠다, 그러면 특전사 병력으로 6곳 확보한다’고 인식한 건가?
곽종근: 전방에서 상황이 발생하면 군 경계태세 격상이 되고 거기에서 끝나면 종결이 되는데 안 끝나면 통합방위태세로 격상이 되고 이 상황이 확대가 되면 계엄까지 갈 수 있다는 논리적 사고 방식의 흐름이 머릿속에 있었다.
2024년 12월 3일 저녁 9시 45분경 곽종근은 김용현으로부터 “곧 비상상황 발표가 있을 거다”라는 연락을 받았고, ‘아 이거구나’라는 생각을 했다.3
여인형(국군 방첩사령관)과 이진우(수방사령관)는 계엄 선포 전 모임에 대해 구체적으로 진술하지 않았지만, 드러난 정황으로는 곽종근과 비슷하게 상황을 인식했다.
윤석열·김용현과의 식사 자리에서 ‘비상상황’, ‘비상대권’이라는 단어를 들었고4, 국회에서의 비상상황에 대비하기 위한 ‘의명 행동화 절차’ 메모를 작성했고5, 12월 3일 계엄 선포 전까지 ‘언제든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는 불안감을 느끼며 계획된 일정을 소화했다6.
‘인원 = 국회 내 위협세력’이라는 주장
군 사령관들의 재판에는 계엄 당일 직접 지시를 받은 각 군 지휘관이 증인으로 출석했다. 여인형과 이진우는 군이 비난의 대상이 된 상황을 사과하면서도 계엄 당일 오간 대화 맥락, 구체적인 지시 내용과 관련해선 적극적으로 주장을 펼쳤다.
2025년 11월 4일 공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조성현(수도방위사령부 제1경비단장)은 ‘12월 4일 00시 30분부터 01시 사이 이진우로부터 ‘국회 본청 내부로 진입해 국회의원을 외부로 끌어내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증언했다. 이진우는 윤석열로부터 “끌어내라”는 지시를 받은 건 맞지만 ‘국회의원이 아닌 정체를 알 수 없는 위협세력, 인원들을 끄집어내라’는 의미였다는 입장이다.
이진우 변호인: (이진우로부터) ‘인원을 끌어내라’ 지시를 들었고 그 ‘인원’은 국회 내 위협세력으로 이해한 것 아닌가? 그래서 윤덕규 소령에게도 증인이 지시받고 들은 대로 “인원 끌어내라”고 지시했고, (계엄 이후) 여러 언론 매체 접하면서 ‘인원’이 ‘의원’으로 변질된 것 아닌가?
조성현: 전혀 아니다. 변호인께서 말을 다 왜곡해서 질문하신 거다.
이진우 측은 조성현이 계엄 당시 수방사 윤덕규 소령에게 지시를 하달할 때 ‘의원’이 아닌 ‘인원’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조성현은 “(이진우는) 정확히 국회의원이라고 했고, 의원이 아닌 맥락이 없었다”고 여러 번 진술했다. ‘의원’이든 ‘인원’이든 그 단어가 가리키는 대상은 국회의원이었다는 취지다.
12월 21일 증인으로 출석한 윤석열은 계엄 당일 수방사가 수행한 임무와 관련해 ‘지시를 한 게 아니라 이진우가 제가 한 혼잣말을 들은 것 같다’고 주장했다. 이날 어떤 내용의 지시를 내렸는지는 명확히 진술하지 않았다.
재판장: 증인은 (계엄 당일) 이진우에게 전화해 상황을 물어보고, 안에 있는 사람 끌어내라고 말한 적 있나?
윤석열: (중략) 제가 전화를 하니까 본청 앞에 수방사 인원은 아직 가지 않았는데 거기 (이진우가) 도착했다고 하니까 지시라기보다는 제 혼잣말로 발로 문이라도 차고 들어가서 무단으로 들어간 사람들 끄집어낼 수 없냐는 취지로 하는 이야기를 (이진우가) 들었다고 한다.
“서버 떼오라고 지시한 적 없다”
여인형 피고인은 계엄 당일 지시와 관련해서 크게 두 가지 주장을 펼쳤다.
하나는 선관위에 병력을 출동시킨 정성우(방첩사령부 제1처장)에게 “선관위 서버를 떼오라고 지시한 적 없다”는 것이고, 나머지 하나는 주요 정치인 14명 체포 명단 하달과 관련해 ‘체포’가 아니라 ‘신병 위치 확인 및 인수’를 지시했다는 것이다. 전자에 대해서는 위증 혐의가 적용돼 추가 기소됐다.

여인형은 재판에서 “서버가 방에 가득 찰 정도로 커서 떼어올 수가 없다”, “선관위 서버 수거가 법적으로, 기술적으로 어렵고 실현 불가능함을 알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증인신문 과정에서 이러한 주장과 배치되는 진술이 나왔다.
군검사: 군검찰 진술 보면 “네 곳에 들어갈 수도 있다고 하면서 피고인 여인형이 서버 복사해야 한다, 복사할 수 있다, (증인이) 어떻게 복사하냐고 하니까 ‘떼와야겠네’라고 했다”고 했는데, 맞나?
정성우: 네, 21시 전후에 네 곳 말씀하시면서 상황 발생하면, 어떤 상황이지는 말 안 했고, ‘상황 발생하면 들어갈 수 있다, 서버 전산실을 출입 통제하고, 그다음이 국정원 등 수사기관에 민간 전문 분석팀 오면 연결해 주고, 여의치 않으면 우리가 서버 카피할 수 있다’라고 하셨다. 제가 ‘어떻게 카피하냐’고 반문하자 ‘그러면 떼와야겠네’라고 말씀하셨다.
이후 증인으로 출석한 윤비나(방첩사 법무실장)도 ‘계엄 당일 정성우가 법무실을 찾아와 (선관위) 서버를 떼와도 되는지 물었고, 증거능력 문제 등 부정적 의견을 전달했다’고 증언했다.
법정에서 마주한 윤석열·김용현
2025년 7월 8일 공판에서 돌연 공소사실을 모두 인정한다고 선언한 여인형7은 모든 증인신문 기회를 포기하지만 윤석열, 김용현에 대해서는 증인신문을 하고 싶다고 밝혔다.
이후 증인으로 출석한 윤석열과 김용현은 대부분의 질문에 증언을 거부했다. ‘본인의 사건과 관련이 있고, 위증 기소의 위험이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12월 23일, 김용현은 증인신문이 진행되던 중 발언 기회를 얻어 사령관 세 사람(곽종근, 여인형, 이진우)에게 사과했다.
“사전 준비할 시간도 없이 급박한 상황에서 헌신적인 임무 수행을 위해 노력하신 것을 많이 깨달았고 정말 감사했다. (…) 자칫하면 수많은 인명피해가 있을 수 있음에도 잘 참아서 극복하고, 단 한 명의 인명피해 없이 임무를 수행했다. 그럼에도 사령관님들을 비롯한 현역 군인들이 그 많은 노고와 헌신을 했음에도 다 가려지고 고통받는 모습이 안타깝고 미안하다. 그 미안함을 극복하기 위해 여러분의 명예 회복을 위해 끝까지 싸울 것이다.”
김용현의 증언 이후 여인형을 대리하는 노수철 변호사는 ‘의견이 있다’며 손을 들었다. “추가로 한 말씀 드리고 싶다. 증인이 말씀하신 내용 관련해서 여인형 피고인은 동의 안 한다는 내용이다. 조서에 남겨주시면 좋겠다.” 이후 추가로 질문할 기회를 달라고 요청했으나 재판장은 허가하지 않았다.
약 1년간 중앙지역군사법원에서 진행된 사령관 5인(여인형·이진우·곽종근·박안수·문상호) 사건은 지난해 12월 조은석 특별검사팀(내란 특검) 요청으로 서울중앙지방법원으로 이송됐다. 윤석열에 대한 증인신문8, 서증조사 등 남은 절차는 서울중앙지법에서 진행된다.
취재:
김주형 기자 jhy@c-watch.org
최윤정 기자 yoon@c-watch.org
카피 에디팅: 조연우
- 지난 7월, 여인형은 ‘공소사실을 모두 인정하고 남은 증인신문을 포기하겠다’는 입장을 밝히며 “저의 판단과 행동이 책임에서 자유롭다고 단 한 번도 생각한 적 없고 온전히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여인형 외 공판, 2025. 7. 8.) ↩︎
- (여인형 외 공판, 2025. 4. 30. 곽종근 증인신문) ↩︎
- (여인형 외 공판, 2025. 4. 30. 곽종근 증인신문) ↩︎
- 여인형은 “(2024년 5~6월 모임에서) 대통령이 비상계엄, 비상대권 발언을 했고, 증인이 무릎 꿇고 계엄 생각은 하지 말라고 한 건가”라는 검찰 측 질문에 “대통령이 계엄이라고 하지는 않았고 비상대권 정도로 이야기했다”고 답변했다.(여인형 외 공판, 2025. 5. 8. 증인신문) ↩︎
- 곽종근에 대한 증인신문 과정에서 이진우가 2024년 12월 2일 오전 11시 30분에 남긴 휴대폰 메모가 제시됐다. ‘의명 행동화 절차를 구상해보았습니다’로 시작되는 메모에는 국회에서 비상상황이 발생할 경우 수방사가 수행할 임무가 담겼다. 이진우는 해당 메모에 대해 ‘계엄이 아니라 단순히 테러 상황이 발생했을 때 할 일을 적은 것’이라고 수사기관에 진술한 바 있다. (여인형 외 공판, 2025. 4. 30. 증인신문) ↩︎
- 이진우는 “(계엄 전날인) 12월 2일 휴대폰으로 ‘국회 해산권’ 등을 검색한 이유가 뭔가”라는 검찰 측 질문에 “제가 마음속에 10월 17일 이후부터 조심하면서 상대방이 무슨 마음인지 의혹을 가지고 봤다. 12월 2일 저녁에 곽종근이 (무슨 상황이 있을지 걱정된다고) 이야기해서 한켠에 이상한 느낌을 갖고 있었다”고 말했다. (여인형 외 공판, 2025. 5. 20. 증인신문) ↩︎
- 2025년 6월 23일, 여인형은 위증 혐의로 추가 기소됐고, 법원은 같은 달 30일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7월 8일 공판에 출석한 여인형은 “추가 구속영장 발부되면서 국민, 재판부 뜻이 무엇인지 새삼 느꼈다. 이 결과를 겸허히 받아들이는 한편 사실을 둘러싼 증인신문이 무의미하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추가적인 증인신문을 포기하고자 한다”고 입장을 밝혔다. ↩︎
- 2025년 12월 23일 진행된 윤석열에 대한 증인신문 절차는 윤석열 측 요청으로 중단됐다. 서울중앙지법에서 재판이 재개되면 이진우, 곽종근 측의 신문이 이어질 예정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