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법한 명령’은 ‘명령’이 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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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인, 헌법도 알고 있습니까?” 변호사가 물었다.

“군과 관련된 부분만 알고 있습니다.” 군복 차림의 증인이 답했다.

변호사는 헌법 제5조 2항을 언급했다. 해당 조항은 ‘군의 정치적 중립성은 준수된다’고 명시한다.

“저는 증인이 아주 불행한 군인이라고 생각합니다.”

“(군의) 정치적 중립성 규정이 헌법에 들어간 이유는 과거에 증인과 같은 불행한 군인이 많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군복을 입은 증인은 반박했다. ‘그러면 안 불행한 군인은 누구인가’, ‘위급한 상황이 닥쳤을 때 이것저것 따져가면서 행동하면 행복한 군인인가’ 되물었다. 

지난 2월 4일 대통령 탄핵심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이진우 전 수도방위사령관. (출처: 헌법재판소)

스스로를 “불행한 군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한 증인은 이진우 전 수도방위사령관이다. 이진우는 작년 12월 3일 국방부 장관의 명령으로 국회에 병력을 보냈다. 출동한 군인들에게 “국회에 들어가 의원들을 끌어내라”고 지시했다. 장관의 명령과 이진우의 지시 이전에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결정이 있었다. 

“군인으로서 중요한 건 책임이라고 생각”

지난 2월 4일, 대통령 탄핵심판 증인으로 출석한 이진우는 ‘그날 왜 국회로 병력을 보냈는지 설명하겠다’며 본인이 임관 이후 군 지휘관으로서 결정을 내려야 했던 상황을 언급했다. 

“(여러 상황을 겪으며) 군인으로서 중요한 건 책임이라고 생각했다”, “12월 3일 국회로 출동하라고 했을 때 먼저 나간 이유는 책임지려면 나가서 보고 임무를 줘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진우는 작년 12월 31일 내란중요임무종사 등 혐의로 구속돼 재판을 받고 있다.

작년 12월 4일 새벽 계엄군이 국회 본청으로 진입하고 있다. (출처: 연합뉴스)

‘국군통수권자인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국방부 장관이 병력을 출동시키라고 하는 상황에서 위헌·위법성을 따질 여유가 없었고, 그렇게 하는 게(위법 여부를 따지고 행동하는 게) 맞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이것이 탄핵심판에서 드러난 이진우의 생각이다.

그만의 생각은 아니다. 증인으로 출석한 다른 군인들(여인형 전 방첩사령관, 김현태 특수전사령부 707특수임무단장)도 비슷한 말을 했다. 시간이 없었고, 위법 여부를 판단할 지식이 없었고, 임무에 대한 명확한 인식도 없었다는 것. 상관의 ‘적법한 명령’에 따랐을 뿐이라는 입장이다.

‘계엄 상황에 따른 정당한 임무 수행이었다’는 믿음은 무엇에서 비롯된 걸까. 왜 계엄 당일 군 지휘관들은 병력을 국회 등으로 보내고, 위법한 임무를 부여했을까. 출동 목적을 포함하지 않은, 이례적인 지시를 내리면서도 지휘관으로서 ‘책임을 지기 위해’ 현장으로 갔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걸까.

‘위법한 명령’은 존재하지 않는다

45년 전에도 상관의 ‘위법한 명령’에 따른 군인들이 있었다. 이들의 복종이 전두환·노태우 신군부의 정권 장악을 가능하게 했다. 

신군부의 1980년 5·17 내란에 대한 법원 판결을 분석한 연구보고서1 첫머리에는 한나 아렌트의 책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 인용돼 있다. 익숙하게 들어본 내용이 이어진다.

“나치 치하 600만 명의 유대인을 학살한 혐의로 회부된 아이히만은 ‘나는 죄가 없다, 나는 단지 명령에 따랐을 뿐이다’라고 항변하였다. 최고 통치권자가 히틀러가 아니라 선한 인격자였다면, 아이히만은 법정에 설 일이 없을 정도로 평범한 사람이었다.”2

보고서는 신군부 내란과 연결된 5·18민주화운동에 대한 진상규명 과정을 다룬다. 당시 책임자 처벌을 논할 때에도 ‘상관의 명령’과 ‘하관의 실행’ 사이 긴장 관계가 존재했다. 1980년 내란에 가담했다고 지목된 군 지휘관 9명은 내란중요임무종사, 내란모의참여 등 혐의가 인정돼 실형을 선고받았다.3

1996년 12월 16일, 12·12 군사반란 및 5·17 내란 사건 항소심 선고공판에 출석한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 (출처: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오픈아카이브)

군인, 경찰 등 공무원이 상관의 위법한 명령을 이행해 범죄를 저질렀을 때 법원이 어떻게 판단하는지는 이미 판례가 있다. 

과거 판결에서 공통으로 제시한 논리는 ‘상관의 명령이 명백하게 위법한 경우 그 명령은 더 이상 ‘(직무상 따라야 할) 명령’이 아니라는 것’이다.4 사실상 ‘위법한 명령’이라는 표현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것이 법원의 합의된 결론이다. 

“하관은 소속 상관의 적법한 명령에 복종할 의무는 있으나 그 명령이 명백한 위법 내지 불법한 명령인 때에는 이는 직무상의 지시명령이라 할 수 없으므로 이에 따라야 할 의무는 없다.”5

상관의 ‘위법한 명령’을 이행한 하관이 처벌받지 않으려면 ‘폭력 또는 협박에 의해 상관으로부터 불법 행위를 강요받았다’는 점이 입증되어야 한다. 해당 기준은 여러 번 인용돼 대법원 판례로 자리잡았다.6

‘명령 불복 규정’ 포함하는 개정안 발의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국회에서는 위법한 명령을 거부할 법적 근거를 만들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작년 12월부터 지난달까지 ‘상관의 명령이 위법한 경우 불복할 수 있는 규정’을 포함하는 군인복무기본법(군인의 지위 및 복무에 관한 기본법) 개정안 7건이 발의됐다.7

군인복무기본법 제25조 ‘(명령 복종의 의무) 군인은 직무를 수행할 때 상관의 직무상 명령에 복종하여야 한다’ 뒤에 다음과 같은 단서 조항을 붙였다. 

‘다만, 상관의 명령이 명백히 위법한 경우 이의를 제기하거나 거부할 수 있으며, 이로 인하여 어떠한 인사상 불이익도 받지 아니한다’8

‘군인복무기본법 개정안 국방위원회 검토보고서’에 정리된 표. 보고서에는 ‘위법한 명령을 거부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한다는 점에서 (개정의) 필요성이 인정된다’는 의견과 함께 ‘위법한 명령인지 여부에 대해 수명자가 자의적 해석을 할 가능성이 있고, 긴급성을 요하는 상황에서 군의 지휘계통에 혼란을 초래할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이 담겼다.

‘명령 불복 규정’을 법에 명시해야 한다는 논의는 이전에도 있었다. 용혜인 의원안에 기재된 법안 설명에 따르면 문재인 정부 때 발간한 ‘군인복무기본정책서(2018~2022)’에 ‘부당한 명령에 대한 거부권 및 신고 의무 법제화’가 이행과제로 제시됐으나 법 개정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위법한 명령을 거부할 법적 근거를 제공하는 이 ‘한 줄’이 이번에는 법 테두리 안으로 들어올 수 있을지 지켜볼 필요가 있다.


           
계엄 당일 대통령과 국방부 장관의 명령을 받고 이행한 군 지휘관 4명(여인형 전 방첩사령관, 이진우 전 수방사령관, 곽종근 전 특수전사령관, 박안수 전 육군참모총장)은 지난 1월부터 군사법원에서 재판을 받고 있다. 여인형·곽종근 등 상관의 지시를 받고 출동한 군경 책임자 9명(이상현 1공수특전여단장, 김현태 707특수임무단장, 김대우 방첩사 수사단장 등)도 지난달 28일 내란중요임무종사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내란 우두머리’ 혐의를 받는 대통령이 지난 8일 석방된 가운데 12·3 비상계엄·내란 책임자에 대한 수사는 지금도 진행 중이다.

           
           
김주형 기자 jhy@c-watch.org
           

           

  1. 민병로·김남진, 「5・18민주화운동의 진상규명과 책임자처벌에 관한 대법원 판결 분석」, 『민주주의와 인권』, 전남대학교 5·18연구소, 제16권 2호, 2016 ↩︎
  2. 한나 아렌트, 김선욱 역,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 악의 평범성에 대한 보고서』, 한길사, 2006, 392쪽 ↩︎
  3. 대법원 1997. 4. 17. 선고 96도3376 전원합의체 판결 ↩︎
  4. 대법원 1980. 5. 20. 선고 80도306 판결, 대법원 1988. 2. 23. 선고 87도2358 판결, 대법원 1997. 4. 17. 선고 96도3376 전원합의체 판결, 대법원 1999. 4. 23. 선고 99도636 판결 ↩︎
  5. 대법원 1980. 5. 20. 선고 80도306 판결 ↩︎
  6. 대법원 1980. 5. 20. 선고 80도306 판결, 대법원 1988. 2. 23. 선고 87도2358 판결, 대법원 1999. 4. 23. 선고 99도636 판결 ↩︎
  7. 김한규, 김현정, 홍기원, 이연희, 이학영, 용혜인, 민형배 의원이 각각 대표발의했다 ↩︎
  8. 용혜인 의원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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