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2월 20일, 이날은 일반에겐 생소하지만 국제민간항공기구가 지정한 ‘국제 항공 사고 피해자와 가족의 날’1이다.
ICAO(The International Civil Aviation Organization, 국제민간항공기구)는 성명문을 발표했다. ‘12·29 여객기 참사’ 이후, 여객기·군용 헬기 충돌 사고와 의료 수송기 추락 사고(미국), 여객기 전복 사고(캐나다)가 잇따라 발생한 때다.
“이런 엄중한 현실은 ‘어느 (희생자)가족도 고립돼 고통받지 않게 해야 한다’는 우리의 책무를 더 무겁게 합니다.”
ICAO는 이날 성명을 통해 “각 국가와 항공사 등은 피해자와 가족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지속적인 지원도 강조했다. 사고 직후의 위기 대응에 그쳐서는 안 된다는 의미다.
“ICAO는 50년 가까이 피해자 지원을 위한 전반적인 체계를 만들어 왔습니다. 견고한 기준(표준)과 정책, 세부 지침을 마련했지만, 최근 감사 결과 회원국 5%만이 ‘피해자 지원 시스템’을 완전히 이행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기준과 실제 이행 격차를 시급히 해결해야 합니다.”

피해자와 가족 지원을 위한 ICAO 지침
국회에서 여러 법안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와 조율을 시작하기에 앞서(지난 기사 참조), 코트워치는 ‘피해자와 가족 지원’ 관련 ICAO 지침서를 찾아봤다.
내용은 구체적이고 광범위했다. 피해자와 가족에게 필요한 지원 및 유의사항이 유형별, 시기별, 주체별(정부·항공사·공항 등)로 정리돼 있다. 너무 ‘당연한’ 내용일 수도 있지만, 현재 한국에서 이런 ‘당연한’ 지원이 제대로 이뤄지려면 준비하고 정비해야 할 부분이 많다.
정부와 항공사, 공항, 관련 민간기업(단체) 등이 ICAO 기준에 따라 어떤 ‘가족 지원 계획’을 마련해야 하는지, 어떤 지원을 보장해야 하는지 하나씩 살펴보자.
가족 지원 계획
가족 지원 계획(Family assistance plan)2은 실제 지원에 매우 중요하다. 지원 상황은 예고 없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즉각 대응해야 하고, 훈련된 인력과 비용, 자원이 필요하다. 지원 계획을 세울 때는 ①지원 받을 대상 ②지원 유형 ③지원 시기 ④지원 제공자 ⑤주기적 계획 리뷰와 실행 ⑥계획 이행에 필요한 법률·규정·정책 마련 등을 고려해야 한다.
코트워치는 ICAO 매뉴얼3이 명시한 지원 유형 16가지를 정리했다.
사고 발생부터 수습까지
| * 가족이 사고에 연관됐는지 확인(Confirmation of the involvement of a family member in an aircraft accident) * 긴급 정보 제공(Provision of immediate information) |
항공 사고가 발생하면, 내 가족이 사고 현장에 있는지, 현재 상태는 어떤지 등을 가장 먼저 알아야 한다. 매뉴얼도 여기에서 출발한다. 탑승객 정보를 정확하고 신속하게 알리는 일이 가장 먼저다.
항공사는 두 가지 안내 방법을 준비해야 한다. 첫 번째는 탑승객 가족에게 직접 연락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문의를 받을 전화 회선을 열어두는 것이다. 탑승객 명단 공개는 방법이 될 수 없다. 이름만 확인할 수 있을 뿐, 당장 무엇을 해야 하는지, 어떤 도움을 받을 수 있는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탑승객 가족은 사고 현장으로 가는 교통편, 항공사 담당자와 소통할 방법, 긴급한 요구사항 처리 등 필요한 정보를 받아야 한다.
| * 신원 확인, 보호 관리, 유해 인도(Identification, custody and return of human remains) * 개인 소지품 보호, 처리, 반환(Protection, processing and return of personal effects) * 프라이버시와 안전(Privacy and security) |
다음으로 매뉴얼은 사고 생존자와 실종자, 부상자를 수습하는 일과 희생자 유해를 인도하는 일이 ‘지원 계획’에서 아주 중요한 단계라고 설명한다. 유해는 신원 확인 과정을 거쳐 가족에게 인도해야 하고, 현장에 남은 개인 소지품 또한 법적 주인에게 돌아가야 한다.
생존자와 유가족 보호도 중요하다. 이들을 위해 마련한 장소에는 관련 없는 사람이 들어갈 수 없도록 보안 조치가 필요하다.
꾸준한 정보 제공이 중요
| * 서비스에 관한 정보 제공(Provision of information about services) * 가족과 소통(Liaison with families) |
사고 발생 직후부터 추모 절차까지 피해자와 가족을 충분히 지원하기 위해서는 필요한 정보를 모두에게 꾸준히 알리는 일이 필수다.
예를 들면, 사고 현장으로 가는 교통편, 재정 지원, 수색·수습·신원 확인·유해 인도, 유류품 관리, 위기 상담, 장기적 고려사항(추모식과 추모시설, 식별되지 않은 유해의 장례) 등이다.
또 매뉴얼은 정부와 항공사, 공항, 민간단체 등 개별 기관에서 어떤 지원을 받을 수 있는지, 개별 기관과의 연락 방법은 무엇인지를 피해자와 가족에게 알려주기를 권고한다.
| * 위기 상담(Crisis counselling) * 긴급 재정 지원(Immediate financial assistance) * 법률 조언(Legal Advice) |
심리적·경제적·법률적 지원도 피해자와 가족 지원에 포함돼 있다.
사고조사 정보를 일반에 공개하기 전에
| * 사고조사에 관한 정보 제공(Provision of information about the accident investigation) |
더 나아가, 피해자와 가족은 무엇보다도 ‘사고가 왜 발생했는지’를 알고자 한다.
항공 사고조사는 재발 방지를 위해 사고 원인을 규명하는 조사다. 한국에서는 국토교통부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가 진행하게 돼 있다.
매뉴얼에 따르면, 조사 당국은 피해자와 가족에게 조사를 어떻게 진행하고 있는지 주기적으로 알려야 한다. 언론 등을 통해 일반에 정보를 공개하기 전에 먼저 알려야 한다. 또 사고 관련 공청회에는 적절한 범위 내에서 피해자와 가족 참석을 보장해야 한다.
애도와 추모
매뉴얼에는 애도와 추모에 관련된 내용도 있다.
| * 사고 현장 방문(Visit to the accident site) * 추모시설과 추모식(Memorials and memorial services) * 출입국과 세관 절차(Immigration and customs formalities) |
매뉴얼은 생존자와 유가족에게 사고 현장을 방문하는 일이 애도 과정의 일부가 된다고 짚는다. 추모 또한 유가족의 권리다. 유가족은 추모식에 참석할 수 있고, 추모시설 계획에 참여할 수 있다. 사고 현장을 방문하거나 추모식에 참석할 때는 출입국과 세관 절차 지원도 필요하다.
| * 가족 모임, 협의체(Family associations) |
매뉴얼은 가족 협의회의 긍정적인 역할도 명시한다. 가족 협의회는 앞서 살펴본 모든 방면에서의 ‘지원’에 관해 이들만의 경험과 인사이트를 나눠줄 수 있다. 때로는 항공 안전을 지키기 위한 활동에 나서기도 한다.
| * 문화적·종교적 고려(Cultural and religious considerations) |
항공 사고 피해자와 가족을 지원하는 일은 본질적으로 누군가의 ‘죽음’을 다루는 일에서 시작한다. 애도 과정, 종교 의식, 추모 방식 등은 유가족의 배경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이들이 가까운 이의 죽음을 충분히 애도하고 추모할 수 있도록 섬세한 태도로 접근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최윤정 기자 yoon@c-watch.org
- The International Day Commemorating Air Crash Victims and Their Families. 2021년 ICAO와 ACVFFI(Air Crash Victims’ Families’ Federation International, 국제항공사고피해자가족연합)는 항공 사고 피해자와 가족을 기리는 날을 매년 2월 20일로 지정했다. ↩︎
- ICAO, ICAO policy on assistance to aircraft accident victims and their families, 2013 ↩︎
- ICAO, Manual on assistance to aircraft accident victims and their families, 20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