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판결> 재난참사와 관련된 판결을 통해 우리 사회가 재난을 어떻게 바라보고, 어떤 책임과 기준을 세워왔는지를 살펴봅니다. 우리에게 법원의 판결문은 너무 어렵고 멀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전문가의 영역으로 여겨지던 판결을 시민의 눈높이에서 풀어 전하며, 재난피해자의 권리를 다시 묻고, 더 나은 사회를 향한 출발점이 되고자 합니다. (재난피해자권리센터 ‘우리함께’)
2025년 11월 26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가 회의를 열었습니다.
‘10·29이태원참사 피해자 권리보장과 진상규명 및 재발방지를 위한 특별법(이태원참사진상규명법)’ 개정안을 심사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개정안은 2차 가해 방지 조항을 신설하고,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의 책무’에 2차 가해를 방지하기 위한 대책 수립·시행을 포함하도록 했습니다.
이날 회의에서 한 의원은 “‘2차 가해를 하면 안 된다’는 일반법이 지금 없느냐”고 질문했습니다.
이에 국회 행안위 전문위원은 “없다”, “그런데 현행법으로도, 2차 가해 행위라는 용어만 없을 뿐이지, 그 행위에 대한 처벌은 가능하다”고 설명했습니다.
전문위원의 설명처럼, 참사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는 ‘2차 가해’라는 특정한 혐의가 아니라, 개별 사건에 따라 수사기관이 적용하는 범죄 혐의로 처벌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유형은 아래와 같습니다.
형법
①명예훼손: 공연히 사실 또는 허위사실을 적시하여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경우
②사자(死者) 명예훼손: 공연히 허위사실을 적시하여 사자의 명예를 훼손한 경우
③모욕: 공연히 사람을 모욕한 경우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정보통신망법)
비방할 목적으로 공공연하게 사실 또는 거짓의 사실을 드러내어 다른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경우(사이버 명예훼손)
2차 가해를 처벌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존재하지만, 참사 피해자에게 끼치는 해악에 비해 처벌 수준이 낮아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문제가 꾸준히 지적돼 왔습니다.
그리고 지난 6월, 지금까지와는 다른 사법부 판결이 나왔습니다. 이태원 참사 2차 가해에 대해 처음으로 실형을 선고한 판결입니다.

의견 표명이 아닌, 범죄
지난 6월 10일, 서울서부지법 재판부는 피고인 A에게 실형(징역 6개월)을 선고했습니다.
피고인 A는 이태원 참사 희생자들에 대한 허위사실을 퍼뜨렸습니다. 2023년 2월부터 12월까지 럼블(영상 스트리밍 플랫폼)과 네이버 카페, 디시인사이드, 인스타그램 등에 총 362회에 걸쳐 영상과 글을 올렸습니다. 희생자들의 사망 원인은 ‘마약 테러’이고, 심폐소생술을 받은 이들이 ‘리얼돌’이라는 취지였습니다.
구속 이후 재판에 넘겨진 A는 혐의를 부인했습니다. 게시한 내용은 ①본인의 ‘의견’을 밝힌 것이고 ②피해자의 사회적 가치를 깎아내리지 않았다고 주장했습니다.
영상과 글을 올린 행위가 ‘사자(死者) 명예훼손’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주장입니다.
명예훼손은 의견 표명이 아닌 사실 적시를 처벌합니다. 여기서 ‘사실’은 주관적 판단이 아니라, 진실인지 허위인지 객관적으로 가릴 수 있는 내용을 의미합니다. (‘진실인지 아닌지’에 따라 사실 적시 또는 허위사실 적시로 나뉘는데, ‘사자 명예훼손’은 허위사실 적시만 처벌합니다.)
나아가, 적시한 내용이 특정인의 사회적 가치나 평가를 침해할 가능성이 있어야 명예훼손죄가 됩니다.
재판부는 피고인 A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게시 내용은 ①의견이 아닌 ‘허위사실’이고, ②피해자의 사회적 가치와 평가를 침해했다고 결론 내렸습니다.
“피고인은 통신의 방법으로 허위사실을 적시하여 이태원 참사 희생자들 중 피해자들의 명예를 훼손하였다고 판단된다.”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조인영 변호사(10.29 이태원 참사 시민대책회의 상황실장)는 “향후 유사 사건들의 향방을 가늠할 수 있는 중요한 기준을 제시했다”고 판결의 의미를 짚었습니다.
먼저, 재판부는 제대로 된 확인 없이 저화질 영상만 가지고 이런 내용을 게시했다는 점을 들어 (단순한 의견 표명을 넘어서는) 범죄의 고의성을 인정했습니다. 또 경찰 등 책임자들에 대한 판결이 인정한 참사 원인을 근거로 게시 내용의 허위성을 판단했습니다.
이는 앞으로 비슷한 사건에서 ‘의견 표명’에 불과하다는 가해자의 주장에 대응하고, 이들이 퍼뜨린 내용이 명백한 허위라는 것을 신속하게 입증하는 기준이 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