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현동 화재 참사 피해자 ‘명예회복’ 위한 소송, 관건은 조례 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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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10월 30일 저녁 6시 55분경, 인천 중구 인현동 4층 상가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지하 노래연습장에서 아르바이트생이 ‘시너’를 바닥에 부은 상태로 담배를 피우려고 라이터를 켜다 붙은 불이 삽시간에 건물 전체로 번졌다. 화재는 57명이 사망하고 86명이 다치는 대형 참사로 이어졌다. 10대 청소년들이 학교 축제를 마치고 모여 있던 2층 호프집에서 주로 인명 피해가 발생했다.

당시 고등학교 2학년, 열여덟 살이던 이지혜 학생도 이날 숨졌다.

참사로부터 26년이 흘렀지만, 고 이지혜 학생의 어머니는 아직 소송을 이어가고 있다. 고 이지혜 학생이 화재사고 ‘피해자’로 인정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아이의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2023년 인천 중구 등을 상대로 ‘재해 사망 보상금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당시 온갖 유언비어가 떠돌았지만, 자식 팔아 돈벌이한다는 그 말이 우리 엄마들의 가슴을 후벼파며 멍들게 했기에, 돈과 관련된 부분이라 정말 나서기 싫었습니다만, 피해자인 우리 아이가 가해자가 되어버렸기에1 우리 아이의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엄마가 나서지 않을 수 없습니다. (중략) 똑같은 학생 신분으로, 똑같은 교복 입고, 똑같은 날 똑같은 사고를 당한 아이인데, 왜 우리 아이만 이렇게 억울하고 원통한 죽음을 당해야만 합니까. 너무 억울합니다.”2

지난 8월 7일 인천시청 앞에서 열린 ‘고(故) 이지혜 학생 명예회복을 위한 인천광역시 중구 인현동 화재사고 관련 보상 조례 개정 촉구 기자회견’에서 어머니 김영순 씨가 발언하고 있다.

항소심 관건은 ‘조례 개정’

2025년 10월 30일, 인천지방법원 415호 법정.

서울고등법원 인천재판부 제2민사부가 항소심 첫 변론을 진행했다. 고 이지혜 학생 어머니를 대리하는 이준형 변호사와 인천 중구를 대리하는 변호사가 재판부를 바라보고 나란히 앉았다. 1심에서 진, 원고3(고 이지혜 학생의 어머니) 측이 항소해 열린 재판이다.

첫 번째 변론은 10분 만에 끝났다. 다음 변론은 2026년 1월 15일. 다음 변론일까지 가장 중요한 건 조례 개정 경과다. 원고 측은 ‘현재 부당한 조례를 개정하기 위한 움직임이 있으니, 항소심에서 이를 반영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조례 개정은 1심에서는 없던 이야기다.

항소심 재판부는 조례 개정 경과를 더 지켜보기로 했다.

재판장은 “저희 재판부에서는 가급적이면 신중한 판단을 하려고 합니다. 쌍방이 시간이 필요하다고 하시면 주장을 입증할 기회를 드릴 거고요. (중략) 속행4 사유는 첫째는 관련 조례의 개정 경과 확인입니다”라고 말했다.

’10·30 인천 인현동 화재 참사’ 희생자 57명 중 56명이 10대 청소년이었고, 희생자 평균 연령은 17세였다. (출처: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경향신문 지면 보도(1999. 11. 2.))

인현동 화재사고 관련 보상 조례

앞서 언급한 조례의 이름은 ‘인천광역시 중구 인현동 화재사고 관련 보상 조례’다. 인현동 화재사고 사상자에게 보상금을 지급하기 위해 2000년 1월 제정했다.

문제가 된 조항은 조례 ‘제3조(보상금의 지급대상 및 범위)’다. 내용은 아래와 같다.

“보상금의 지급 대상은 인현동 화재사고로 인한 사망자와 부상자에 한한다. 다만, 인현동 화재사고의 실화자와 가해자이거나 그 종업원과 건물주 및 공무수행중인자는 제외한다.”

고 이지혜 학생은 ‘종업원’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보상금 지급 대상에서 제외됐다.

하지만 참사 당일 호프집에 처음 간 고 이지혜 학생이 실제로 ‘종업원’으로 아르바이트를 했는지 명확하지 않다. 지난 10월 17일 열린 토론회 자료집5에는 “당시 친구들의 증언에 따르면, 이지혜는 아르바이트를 하자는 친구 제안을 받고 호프집으로 간 것까지는 확인되었는데, 당일 현장에 있던 대부분이 사망함에 따라 실제 채용 여부 및 근로 여부는 확인되지 못했다”는 내용이 있다.

어머니는 고 이지혜 학생을 보상금 지급 대상에서, 즉 ‘피해자’에서 제외한 인천 중구 보상심의위원회 결정을 바로잡고자 2023년 12월 소송을 제기했다.

“2심마저 패소하면 명예회복할 길 영영 사라질 것”

1심 재판부는 2024년 7월 인천 중구 손을 들어줬다.

판단 근거는 과거 손해배상 관련 판결6이다. 고 이지혜 학생 유가족은 2001년 상가 호프집·노래연습장 업주, 대한민국, 인천광역시, 인천 중구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했고, 2003년 판결이 확정됐다.

1심 재판부는 그 2003년 판결 내용, “망 이지혜는 1999. 10. 30. 이 사건 호프집에 시간제로 수당을 받는 단시간 근로자로 처음 고용되어 근무하던 고등학생이다”, “호프집의 종업원이었다는 이유로 보상에서 제외되었다”라는 내용을 근거로 ‘조례에 따라 보상금을 청구할 권리가 없다’고 판단했다.

1심에서 패소한 이후, ‘이지혜 학생의 명예회복을 위한 현안 대응팀’7은 항소심 대응을 고심했다. 정원옥 문화사회연구소 대표는 지난여름 대응팀 활동에 대해 아래와 같이 썼다.

“2심 결과가 절망적으로 예측되는 가운데 대응팀의 고민은 깊어졌다. 어떻게 해야 패소를 피할 수 있을까. 2심마저 패소하고 나면 이지혜의 명예를 회복할 길이 영영 사라질 것이다. 남은 방법은 2심 재판부가 1심과 다르게 판단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서 (중략) 즉 정치적 해법밖에 없다는 결론에 다다랐다.”8

대응팀은 “1심과 다르게 판단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기 위해, 조례 자체를 개정하기로 했다.



고 이지혜 학생 어머니와 대응팀은 지난 8월 7일 인천시 인권위원회에 진정서를 제출했다. 조례가 합리적 이유 없이 특정한 사회적 신분(종업원)을 보상금 지급 대상에서 배제함으로써, 평등권을 침해하기 때문에 시정이 필요하다는 내용이다. 지난 9월 19일 국민권익위원회에도 시정 권고를 요청하는 민원을 넣었다.

하지만 조례를 개정하기 위해서는 결국 인천 중구와 중구의회가 나서야 한다.

고 이지혜 학생은 인천 중구 조례 제3조와 보상심의위원회 결정에 따라, 26년 동안 참사에 책임이 있는 ‘가해자’처럼 분류됐다. 26년이 지난 지금이라도 과거의 잘못을 바로잡을 수 있도록, 인천 중구와 중구의회가 조례 개정 논의를 시작해야 할 때다.

  1. 당시 지하 노래연습장과 2층 호프집 업주의 종업원이었던 3명은 불을 낸 ‘실화자’이거나 술값을 받기 위해 대피를 막아 인명 피해를 키운 ‘가해자’에 해당했다. 종업원인 이들의 불법 행위로 다수의 피해자가 발생했다. 고 이지혜 학생은 인명 피해에 책임이 있는 ‘실화자’나 ‘가해자’가 아님에도, 업주의 종업원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인다는 이유로 피해자 자격을 인정받지 못했다. ↩︎
  2. ‘고(故) 이지혜 학생 명예회복을 위한 인천광역시 중구 인현동 화재사고 관련 보상 조례 개정 촉구 기자회견'(2025. 8. 7.)에서 어머니 김영순 씨가 발언했다. ↩︎
  3. 법원에 민사 소송을 제기한 사람. ↩︎
  4. 재판을 마치지 않고 다음에 이어서 계속한다는 의미. ↩︎
  5. ‘故 이지혜 학생 명예회복을 위한 활동의 의미’, 정원옥, ‘10.30 인천 인현동화재참사 기억과 추모, 명예회복을 위하여’ 토론회 자료집. ↩︎
  6. 인천지방법원 2003. 1. 28. 선고 2001가합7137 판결. ↩︎
  7. 인현동화재참사 유가족협의회, 재난피해자권리센터 ‘우리함께’, 인권운동공간 활, 문화사회연구소, 정예지 부평구의원, 이순민 인천일보 기자, 이준형 변호사, 신숙현 PD 등이 참여한다. ↩︎
  8. 정원옥, 같은 토론회 자료집. ↩︎

취재: 최윤정 기자 yoon@c-watch.org

카피 에디팅: 조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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