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명의 협박자들

2023년 7월 24일, 첫 번째 예고가 올라왔다.

작성자 A는 디시인사이드 남자연예인 갤러리에 “수요일(26일) 신림역에서 한국 여성 20명을 죽이겠다”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칼을 주문한 내역도 넣었다.

같은 달 발생한 신림동 흉기 난동으로 사상자 4명이 나온 뒤였다.

A의 예고는 순식간에 퍼진다. 원본 글은 삭제됐지만, 캡처 이미지가 남아 계속 퍼진다. 경찰에도 신고가 들어와 경찰청 사이버수사팀이 IP 추적에 나선다.

A는 25일 새벽 경찰에 신고하고 자수했다.

글이 올라오고 12시간 만에 A가 붙잡히면서 사건이 일단락되는 듯했지만, 이는 시작에 불과했다. “신림역에 칼 들고 서 있다”는 글이 하루 만에 또 올라왔고, 경찰은 또 수사를 시작했다.

8월 4일, 분당에서 차량 돌진과 흉기 난동 사건이 발생했다. 사상자가 14명 나왔다.

더 많은 예고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익명의 작성자들은 디시인사이드 등 온라인 커뮤니티에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칼부림을 하겠다”고 예고했다. 살인이나 테러 예고는 과거에도 종종 있던 일이지만, 이번에는 예고가 단기간에 전국적으로 유행처럼 번졌다. 이례적인 현상이었다.

8월 28일 기준, 경찰이 수사한 글만 476건에 달한다.

경찰은 작성자를 체포하거나 수상한 사람을 검문하기 위해 출동했다. 도심 한복판에 장갑차가 등장했다.

사람들은 ‘예고’에서 언급한 곳을 조심하라는 의미로 예고 글을 공유했다. 범죄를 예고한 시간과 장소, 검거 상황을 전국적으로 보여주는 웹사이트도 생겼다.

도심에 등장한 장갑차. 출처: YTN(2023년 8월 5일, 8월 8일)

“내가 죽여야 할 건 사람이라 불릴 수 없던 지금까지의 나”

이들의 예고는 대부분 ‘관심 끌기’용으로 밝혀졌다.

경찰은 8월 말까지 476건의 글을 수사해 235명을 검거했다. 이 중 97명이 미성년자였다.

검거된 작성자들은 “예고한 내용을 실행에 옮길 의도는 없었다”고 말했다. “관심을 받고 싶어서”, “홧김에” 예고 글을 올렸다고 했다.

게시글 제목과 내용이 대놓고 다른 경우도 있었다. 한 게시글의 제목은 “신림역 2번 출구에 칼 들고 서 있다. 이제부터 사람 죽인다”지만, 내용은 “내가 죽여야 할 건 사람이라 불릴 수 없었던 지금까지의 나…이제부터 허물을 벗고 새 사람으로 다시 태어난다”였다.

다른 게시글은 “춘천 7시 30분 칼부림할 예정이다”라는 제목에 내용은 “회 떠 먹어야지”였다. 생선회 뜨는 사진도 같이 올렸다.

몇몇은 글을 올린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스스로 삭제했다.

“혜화역에서 칼부림하겠다”는 내용의 게시글은 작성자가 8초 만에 내렸지만, 짧은 틈에 캡처돼 빠르게 퍼졌다. 작성자는 다음 날 체포됐다.

 

“법정 최고형 처벌 이뤄지도록 하라”

검찰과 경찰은 ‘엄중 처벌’ 방침을 세웠다. 구속 수사를 적극 검토했다.
 
이원석 검찰총장은 8월 6일 “초동수사 단계부터 경찰과 협력해 법정 최고형 처벌이 이뤄지도록 하라”, “협박죄 외에도 살인예비, 위계공무집행방해 등 가능한 형사 법령을 적극 적용하라”고 지시했다.
 
검찰은 작성자들을 기소하며 공소장마다 유사한 내용의 ‘전제사실’을 적었다. 당시 상황을 요약 기재해 “(기소된 이들의) 죄질이 좋지 않다”고 강조했다.
 

[전제사실]
… 이후 SNS 등에 특정 장소에서 불특정 다수인을 살해하겠다는 내용의 일명 ‘살인예고’ 글이 다수 게재되어 모방범죄 우려에 대한 시민들의 불안이 가중되어 있었고, 이러한 글을 본 시민들의 신고에 따라 대규모 경찰력이 해당 지역의 경비 강화 및 범인 추적 업무 등에 동원되는 등 치안 공백이 우려되는 상황이었다.

 
현재 검찰은 1심 선고 형량이 낮다며 항소를 이어가는 중이다.
 

법원은 첫 번째 ‘예고’ 글 작성자 A에게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출처: 연합뉴스TV(2023년 7월 27일), KBS(2023년 7월 27일)

공중(公衆) 협박죄

익명의 작성자들은 주로 협박과 위계공무집행방해 혐의로 기소됐다.

협박은 죄가 된다. 형법에서의 협박은 “상대에게 공포심을 일으키기 위해 생명과 신체, 명예 등에 해를 가할 것을 통고하는 일”이다. 여기서 중요한 건 ‘상대’다. 협박죄가 성립하려면, 협박 상대가 있어야 한다.

1심 재판부 15~20곳의 판결 내용을 살펴보니, 몇몇 재판부는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쓴 글로는) 협박의 피해자가 충분히 특정되지 않아 범죄사실 일부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했다.

검찰은 법무부에 형법 개정을 건의한 상태다. 법무부는 협박 상대, 피해자가 특정되지 않아도 처벌할 수 있도록 ‘공중 협박죄’를 신설하는 안을 추진 중이다.

첫 번째 예고 글을 올린 A는 11월 3일 1심 선고를 받았다.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 판사는 “실제로 살인의 실행에 착수했을 가능성 자체는 크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검사는 “형량이 낮다”며 항소했다.

1심 선고 이후 풀려난 A는 현재 2심 재판을 앞두고 있다.

코트워치는 A와 같은 ‘예고’ 글 작성자들이 출석하는 2심 재판을 보도한다.

익명의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현실의 법정으로 나온 이들의 모습, ‘관심 끌기’와 ‘범죄’를 넘나들던 이들을 향한 법원의 반응을 살펴본다. 1심 재판부 판결을 포함해, 엄중한 수사가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 남은 것들을 들여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