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23일, 수원지방법원에서 열린 아리셀 중대재해 참사 1심 선고 공판. 형사14부 재판장은 약 1시간 50분 동안 판결문을 읽어내려갔다. 중대재해처벌법, 산업안전보건법, 파견법 등 적용 법조의 취지를 여러 번 언급했다.
재판부는 아리셀 측 주장을 대부분 받아들이지 않았다. 박중언 등 아리셀 경영진이 전지 폭발 화재 가능성을 예견할 수 있었으나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아 사고로 이어졌다고 봤다. 또 아리셀 측이 전지 생산량을 늘리기 위해 파견노동자를 공정에 투입하면서도 실질적인 안전교육은 실시하지 않아 다수 노동자가 사망에 이르게 됐다고 판단했다. 박순관 대표가 아리셀 경영 책임자가 아니라는 피고인 측 주장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아리셀 박순관 대표, 박중언 총괄본부장에게 징역 15년이 선고됐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최고 형량이다.1 공범으로 기소된 아리셀 직원 3명은 징역 및 금고 1~2년, 불법파견업체 경영자는 징역 2년, 건설업체 대표에게는 벌금 천만 원이 선고됐다. 아리셀 법인에 벌금 8억 원, 불법파견업체 메이셀과 한신다이아에는 각각 벌금 3천만 원이 부과됐다. 생산 담당자를 도와 전지를 운반한 아리셀 직원 1명에게는 무죄가 선고됐다. (하단 표 참고)

재판부, 아리셀 측 주장 “설득력 없다”
(1) “법정은 진실을 밝히는 곳이라 사실을 외면하거나 회피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아들인 박중언에게 경영을 맡겼다. 아리셀을 경영한다고 생각하지도 않았고 일체 관여하지도 않았다. 아리셀을 경영했다는 식으로 검사가 이야기하는데, 아버지로서, 경험이 있는 선배로서 조언을 해준 것에 불과하다는 점을 이해해주시면 감사하겠다.” (2025. 7. 23. 결심공판, 박순관 최후진술 중 일부)
(2) “2020년 아리셀 설립 이후 제가 경영했다. 저 나름 최고의 회사를 만들려고 최선을 다했다. 전지 품질에 자부심이 있었지만 갑작스러운 사고가 발생해 참혹하다.” (같은 날, 박중언 최후진술 중 일부)
위 두 가지 발언에는 이번 재판의 핵심 쟁점이 담겨있다.
(1) 먼저 박순관 대표가 중대재해처벌법상 ‘경영 책임자’에 해당하는지 여부다. 아리셀 측은 ‘박순관은 명목상 대표이사일 뿐 실경영자는 박중언’이라고 주장해왔다. 안전점검보고서의 최종 결재권자가 박중언이라는 점, 대외적 계약 업무를 박중언이 맡아서 진행해 왔다는 점 등을 근거로 들었다. 지난 5년간 박순관이 아리셀 공장에 몇 번 방문했는지도 재판 내내 쟁점이 됐다. 박순관은 지난 7월 23일 최후진술에서 ‘아리셀을 경영한 사실이 없음’을 강조했다.
(2) 두 번째는 전지 폭발 화재가 ‘예기치 못한’ 사고라는 주장이다. 아리셀 측은 1차 공판 때부터 수사로 정확한 화재 원인이 밝혀지지 않았다는 점, 아리셀 경영진이 ‘원인 불명의’ 전지 폭발을 예측할 수 없었다는 점을 강조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렇게 연타로 터질 게 아닌데 모르겠다”, “전지 연쇄 폭발을 상상하지 못했다”고 한 아리셀 직원들의 수사기관 진술을 인용했고, 아리셀 과거 화재 사고2와 이번 사고는 원인과 양상이 모두 다르다는 점을 강조했다.
재판부는 두 가지 주장 모두 받아들이지 않았다. 박중언이 아닌 박순관을 아리셀 경영 책임자로 봤고, 박중언 등 아리셀 경영진이 과거 화재 사례, 사고 위험 징후 등을 바탕으로 전지 폭발을 충분히 예견할 수 있었다고 판단했다.
“(박순관은) 박중언으로부터 아리셀의 경영 전반에 대한 상세한 보고를 받으며 일상적인 업무 이외에 피고인의 의견 개진이 필요한 개별적인 사안에 대하여 박중언을 지시·감독하는 권한을 행사하고 있었고, (…) 대표이사로서 안전·보건에 관한 최종적인 권한과 책임을 부담하는 사업총괄자에 해당한다고 판단하며, 중대재해처벌법상 안전보건 확보 의무가 있다는 점 및 이를 위반한다는 점에 대한 고의가 있었다고 인정된다.”3
“(아리셀 공장에서 발생한) 앞선 4개의 사고가 모두 다른 별개의 원인으로 발생하였다는 것은 차후에 앞선 사례에서 발생한 사고와 전혀 다른 원인으로도 전지가 폭발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 아리셀에서 기존에 발생한 사고와 동일한 원인으로만 전지가 폭발하리라 예상하고 그러한 위험에만 대비하여서는 안 된다.”4
재판부는 박순관이 대표이사로 회사 운영에 관여하면서도 사업장 안전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고, 박중언 등 아리셀 임원진이 전지 폭발 위험 가능성을 충분히 인지할 수 있었음에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아 큰 참사 피해로 이어졌음을 강조했다.
“아리셀은 생산량을 맞추기에 급급한 나머지 안전에 필요한 조치가 무엇인지 돌아보지 아니하고 아무런 대비도 없이 생산 공정을 계속하였다. 그로 인한 참혹한 결과는 피고인들이 아니라 피해자들과 유족들이 온전히 부담하게 되었다.”5

“산재 반복 악순환 고리 끊어야”
“(중대재해처벌법의 의미는) 중대재해가 발생할 수 있는 구조적인 환경, 즉 안전관리 시스템을 구축할 권한과 책임이 있음에도 이를 방치한 대표이사와 같은 경영 책임자 등에게도 산업재해 발생에 대한 책임을 부과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재판부는 선고 공판에서 중대재해처벌법의 입법 취지를 여러 번 설명했다. 일터에서 사고 발생 시 현장 관리자만 처벌하는 기존 법의 한계를 깨기 위해 중대재해처벌법이 만들어졌고, 다수 사망자가 발생한 이 사건의 책임자에게도 무거운 형을 선고해야 함을 강조했다. “대표이사가 손쉽게 제3자를 내세워 책임을 면하는 결과로 이어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아리셀 측이 일부 유족과 합의했다는 점은 유리한 사정에 해당하나 “일부 제한적으로 고려할 수밖에 없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장기간 법적 분쟁을 감당하기 어렵거나 경제적 형편 등 불가피한 이유로 합의에 응한 유족들의 입장도 고려해야 한다”며 “기업이 합의를 빌미로 선처를 받고 다시 안전관리를 소홀히 하는 악순환을 끊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날 아리셀 산재피해가족협의회와 대책위원회는 수원지법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1심 선고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김태윤 아리셀 산재피해가족협의회 공동대표는 “23명, 아니 가족 100명을 죽인 대표에게 15년은 너무 짧다. 다만 (판결 내용 중) 중대재해처벌법의 책임자 의무를 강화하고, 이런 참사들이 더 이상 벌어지지 않게끔 한다는 부분은 그나마 마음이 놓인다”고 말했다. 아리셀 대책위원회 법률지원단장을 맡은 신하나 변호사는 “아무리 중한 형량을 내려도 23명이 돌아올 수는 없다. (…) 형량은 아쉽지만 판시 내용이 의미하는 것에 대해 우리 사회가 곱씹어봐야 하는 문제”라고 말했다.
아리셀 중대재해 참사 1심 결과
| 이름 | 소속/설명 | 1심 선고 |
| 박순관 | 아리셀 대표이사 | 징역 15년 |
| 박중언 | 아리셀 총괄본부장 | 징역 15년, 벌금 100만 원 |
| 홍OO | 아리셀 상무 | 징역 2년 |
| 박OO | 아리셀 직원 | 금고 2년 |
| 오OO | 아리셀 직원 | 금고 1년 |
| 이OO | 아리셀 직원 | 무죄 |
| 정OO | 파견업체 대표이사 | 징역 2년 |
| 정OO | 건설업체 대표이사 | 벌금 천만 원 |
| 아리셀 | 일차전지 제조업체 | 벌금 8억 원 |
| 한신다이아 | 인력파견업체 | 벌금 3천만 원 |
| 메이셀 | 인력파견업체 | 벌금 3천만 원 |
| OO산업건설 | 건설업체 | 벌금 천만 원 |
-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의 재판 실무상 쟁점>(정현희, 사법정책연구원, 2022) 보고서에 따르면 중대재해처벌법의 법정 최고형은 징역 30년이다. 지난 7월, 검사는 아리셀 박순관 대표에 징역 20년을, 박중언 총괄본부장에는 징역 15년을 구형했다. ↩︎
- 아리셀에서는 2021년 11월 전압 검사 중 전지가 폭발한 사고, 2021년 12월 직원이 전지를 옮기던 중 트레이가 쏟아지면서 폭발한 사고, 2022년 3월, 폐전지실에 보관하던 전지에서 열이 발생해 트레이에 불이 붙은 화재 사고, 참사 이틀 전인 2024년 6월 22일 발열 현상이 확인된 전지가 폭발하는 사고 등 총 4건의 폭발 혹은 화재 사고가 발생했다. ↩︎
- 수원지방법원 2025. 9. 23. 선고 2024고합833, 132쪽. ↩︎
- 같은 판결, 71쪽. ↩︎
- 같은 판결, 162쪽. ↩︎
취재: 김주형 기자 jhy@c-watch.org
카피 에디팅: 조연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