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URT WATCH
익명의 협박자들

(1개의 업데이트) 익명의 협박자들② “선고까지 매일 반성문 한 장씩 쓰라”

코트워치는 의미있는 사건을 다룬 재판을 빈틈없이 추적해 보도하는 법조 전문 독립언론입니다.
코트워치는 한국독립언론네트워크(Korea Indepentent Newsroom Network, KINN) 소속 언론사로, 우리 사회에 이로운 보도를 하기 위해 모인 매체들과 함께 활동합니다.

(사건개요 자세히 보기(클릭))

바로가기(각 항목을 누르면 이동합니다)
1) 2심 공판
2) 2심 선고(2024년 2월 16일 업데이트)


2023년 12월 22일 대구지방법원 별관 3호 법정.

재판장은 반말과 존댓말을 섞어 썼다.

피고인 C에게도 마찬가지였다. 20대 피고인 C는 카키색 죄수복을 입고 법정에 들어왔다. 아직 형이 확정되지 않은 미결수 복장이었다. 목소리가 크고 분명했다.

2심 첫 공판에서 C는 “피해를 입은 분들, 그리고 공권력을 남용하게 해 죄송하다”며 “결과를 깨닫고 무척 후회하고 있다”고 말했다. “건실한 청년으로 살아갈 기회를 달라”는 말로 최종 진술을 마쳤다.

재판장은 바로 재판을 끝내지 않고 물었다.

재판장: 이렇게 한 이유가, 경기 보러 갔다가 화나서 우발적으로 한 거야?

피고인 C: 집에서 TV로 보다가…

재판장: 그런데 왜 칼을 들고?

2023년 8월 6일 C는 집에서 OO 구단의 프로배구 경기를 봤다. 1세트에 이어 2세트도 패색이 짙던 오후 2시 21분, C는 스포츠 중계 앱 ‘라이브스코어’에 실시간 댓글을 남겼다. “묻지마 칼부림, OO 숙소 가서 한번 칼춤 추자”, “OO 숙소에 칼부림 예고한다”, “오늘 20시에 OO 숙소 칼부림합니다”.

“OO 숙소 가서 한번 칼춤 추자”

C의 국선 변호인은 “경기에 패배해 우발적으로 댓글을 올린 것”이라며 “평소 스포츠 중계 앱의 분위기가 과격해 이런 파장을 낳을지 몰랐다”고 변론했다.

재판장은 8월 4일 서현역에서 발생한 칼부림 사건을 언급했다. 목소리가 조금씩 높아졌다.

재판장: 당시 뉴스, 분당 서현역 모방범죄 아니요?

피고인 C: 뉴스에서…

재판장: (모방범죄) 맞지? 맞아, 안 맞아!

재판장은 C에게 대답할 틈을 주지 않았다.

재판장: TV 보고 따라한 거 아니야! 경찰관 몇백 명 출동했지? (올린 댓글이) 어떤 파장을 낳을지도 모르고 말이야, 경기에서 졌다고 칼부림…

C의 댓글은 댓글을 올린 날 바로 신고됐다.

앱 이용자의 신고를 접수한 경찰은 OO 구단의 숙소 및 당시 선수단이 묵고 있던 호텔 주변에 기동대, 특공대 등 경찰관 184명을 배치했다. 선수단은 그날 계획한 훈련을 하지 못했다.

C는 다음 날인 7일 오전, 집 인근에서 체포됐다.

경찰 조사에서 C는 “포인트를 잃어 화가 났다”며 “실제로 범행을 하려고 했던 건 아니다”라고 말했다. 당시 스포츠 승률 웹사이트에서 OO 구단에 5만 원 상당의 포인트를 건 상태로 밝혀졌다.

C는 구속된 상태로 재판을 받았다. 1심에서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았다.

2023년 8월 7일, 경기장 출입 보안이 강화된 프로배구대회 현장(출처: 한국배구연맹)


검찰은 1심 형량이 낮다는 이유로 항소했다. 공판검사는 재판부에 “원래 구형대로 징역 2년을 선고해달라”고 했다.

2심 재판을 마무리하며 재판장이 내린 결론은 반성과 반성문이었다.

재판장: 피고인은 반성을 많이 해야 돼. 반성문 매일 한 장씩 써! 얼마나 반성했는지 보고 선고할 테니까. 들어가(법정에서 나가라는 의미)!

C는 끝까지 분명한 목소리로 “알겠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법정을 떠났다.

C에 대한 2심 선고는 1월 17일로 잡혔다.

1심 판결(2023년 10월 17일)

1심 재판부는 피고인 C에게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했다.

협박과 위계공무집행방해, 업무방해 혐의를 모두 인정했다. 협박 대상은 ‘프로배구 OO 구단 선수단’이었다.

재판부는 “국민적 공포감이 확산하던 시기에 선수단 일정은 물론 경찰력을 마비시킨 범행”이라며 “그 해악과 위험성, 동종·유사 범행에 대한 예방 필요성을 고려할 때 실형 선고가 불가피하다”고 판시했다.

법무부는 11월 24일 C에게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C의 댓글로) 경북경찰청 경찰관 및 기동대 등 167명이 투입됐다”며 수당과 차량 유류비 등 총 1200만 원을 피해액으로 산정했다.

1심 재판부: 대구지법 포항지원 형사3단독

“약간은 모방으로, 약간은 장난삼아 올린 것으로 보인다”

2024년 1월 17일, 피고인 C는 2심 선고를 받았다.

대구지방법원 별관 3호 법정. 하늘색 죄수복을 입은 C는 열두 번째 순서로 나왔다.

긴장 때문인지 지난 공판보다 기운이 없어 보였다. 목소리도 작아졌다. 그래도 중간중간 끼어들어 묻지 않은 말에 대답하는 모습은 여전했다.

C는 피고인석이 아닌 증인석 뒤에서 재판장을 정면으로 마주했다.

재판장은 유리한 부분보다 불리한 부분을 먼저 말했다. 이전 피고인들이 받은 선고를 볼 때, 이는 C에게 나쁘지 않은 신호였다.

재판장: 당시 이런 범죄가 횡행했고, 경찰력이 낭비…

피고인 C: 예. 죄송합니다.

재판장: …여전히 모방범죄가 아닌가, 판단이 들어요. 사안이 가볍지 않고 죄질이 좋지 않다. 피해자에게 용서받거나 합의하지 못했다.

재판장은 지난번처럼 ‘모방범죄’를 언급했지만, 차분했다.

2024년 1월 17일, 대구지방법원에서 피고인 C에 대한 선고 공판이 열렸다.

“피고인의 주변 사람들을 믿고 석방합니다”

재판장은 역정을 내지도 목소리를 높이지도 않았다.

재판장: 그렇지만 구속돼 구금 생활을 하는 동안 진지한 반성의 기회를 가진 것으로 보인다. 가족들이 피고인의 계도와 보호를 다짐하고, 선처를 탄원하고 있다. 피고인의 지인들도 탄원하고 있다. 사회적 유대관계가 아주 괜찮은 것으로 보여요.

“피고인의 주변 사람들을 믿겠다”고 했다.

재판장: 피고인을 석방하더라도 다시 범죄에 빠질 것 같지 않아 보인다. 약간은 장난삼아, 약간은 모방으로 글을 올린 것으로 보인다. 피고인의 주변 사람들…

피고인 C: 예, 제가 나가서.

재판장: …그것을 믿고 석방합니다.

다른 피고인들에게 집행유예를 선고하면서, 재판장은 방청석에서 이들의 가족이나 친구를 찾아 말을 걸기도 했다. “다시 범죄에 빠지지 않도록 도우라”고 당부하기 위해서였다. 피고인 C에게는 그렇게 하지 않고, 계속해서 담담한 태도로 주문을 읽었다.

재판장: 주문. 원심판결을 파기한다. 피고인을 징역 1년에 처한다. 다만, 2년 동안 형의 집행을 유예한다. 80시간의 사회봉사를 명한다.

선고는 예상보다 차분하고 빠르게 끝났다.

마지막으로 재판장은 “이해하느냐” 물었고, C는 “잘 알겠다” 대답했다. 이날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C는 석방됐다. 다만, 아직 법무부의 민사소송이 남았다.



최윤정 기자 yoon@c-watch.org

  • 2심 재판부
    • 대구지법 제5형사부
  • 혐의
    • 협박, 위계공무집행방해, 업무방해

코트워치에서 더 알아보기

지금 구독하여 계속 읽고 전체 아카이브에 액세스하세요.

계속 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