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URT WATCH
익명의 협박자들

(1개의 업데이트) 익명의 협박자들① “본인이 쓴 ‘교도소 후기’ 소리 내 읽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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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심 공판
2) 2심 선고(2024년 2월 16일 업데이트)

이 사건은 현재 3심을 앞두고 있습니다.

2023년 12월 12일 춘천지방법원 101호 법정.

머리카락이 하얗게 센 재판장은 목소리가 작았다.

20대 피고인 B는 검은색 점퍼를 입고 방청석 앞 열에서 본인 순서를 기다렸다.

이날은 B의 2심 첫 공판일이다. B의 국선변호인은 “B가 올린 게시글은 장난이었다”고 변론했다.

변호인: 1심에서 일부 법리적인 다툼이 있었지만, 지금은 모두 인정하고 반성하고 있습니다. 게시글은 장난이었습니다. 내용에 회를 뜨는 사진이 있습니다. 불특정 다수를 위협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현재 피고인은 인터넷 중독 등의 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2023년 8월 4일 오후 6시 56분, B는 디시인사이드 바이크 갤러리에 “춘천 7시 30분 칼부림할 예정이다”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내용은 “회 떠 먹어야지.” 생선회 뜨는 사진도 첨부했다.

피고인 B가 게시글 본문에 올린 회 뜨는 사진(출처: 티스토리 블로그)

“춘천 7시 30분 칼부림 예정”, “회 떠 먹어야지”

사흘 뒤, 한 이용자가 “게시글은 이미 삭제됐지만, 혹시 몰라 걱정돼 신고한다”며 B를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은 곧바로 집에 있던 B를 체포했다. 신고를 받고 나서기까지 1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춘천경찰서 경찰관 15~20명이 출동했고, 사람이 많은 장소에서는 검문까지 벌어졌다.

붙잡힌 B는 구속 상태로 재판을 받았다. 1심에서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아 10월 26일 풀려났다.

12월 12일, B는 다시 피고인석에 섰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을 하라”는 재판장의 말에 준비해온 종이를 꺼내 읽기 시작했다.

피고인 B: 먼저 재판장의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구속 이후) 디시인사이드에서 제 근황을 궁금해하는 사람이 많아, 걱정해줘서 고맙다는 취지로, 다시는 디시에 들어가지 않겠다는 취지로 글을…

재판장이 중간에 끼어들었다.

재판장: 무슨 취지요?

재판을 시작할 때보다 몇 배는 큰 목소리였다.

재판장: 지금 반성 안 하시는 거예요?

법정에 잠깐 정적이 흘렀다.

재판장: 본인이 쓴 글 기억 못 해요? 반성 안 해요? 본인 말하는 거랑 다른데?

재판장은 공판검사에게 집행유예로 풀려난 직후 B가 쓴 글을 보여달라고 했다. 공판검사는 항소이유서에 첨부한 ‘교도소(구치소) 후기’를 모니터에 띄웠다.

10월 26일 오후 3시 46분, B는 디시인사이드에 글을 올렸다. 제목은 “구속 후기 쓰겠습니다.”

“구속 확정되고 이틀 더 있다가 또 살인예고 글 쓴 사람이 내 옆에 잡혀 와서 웃겼다. 그 사람이랑 도원결의 맺고 같이 이송됐다”, “뭐로 들어왔냐고 물어봐서 협박으로 들어왔다니까 ‘아 살인예고 글~’하면서 다 소문나서 인기남 됐다”, “반성문 6장 정도 쓰고 10월 26일에 선고받고 오늘 집행유예로 나왔다”, “구속 기간에 우울증도 고치고 반성 많이 했다. 80일 동안 진짜 너무 힘들었다”, “반성문에 다시는 디시인사이드 안 하고 현실 살겠다고 판사님이랑 약속해서 이 글 마지막으로 탈갤(탈(脫) 디시인사이드 갤러리)할 거다.”

“공권력을 조롱했다”, “죄송하고 후회한다”

검찰은 1심 형량이 낮다는 이유뿐만 아니라, 해당 글이 “공권력을 조롱했다”고 지적하며 항소했다. B의 변호인은 “글을 자세히 보면, 고생했다는 내용과 앞으로 글을 쓰지 않겠다는 내용이 있다”며 “공권력을 조롱하지 않았다”고 변호했다.

재판장은 법정에서 B가 본인이 쓴 글을 소리내 읽도록 했다.

재판장: 본인이 후기 쓴 거 맞죠. 무슨 취지로 썼냐고. 읽어봐요.

B는 글을 읽기 시작했다.

피고인 B: ‘검사가…’

재판장: 계속 읽어보라니까.

피고인 B: ‘…이게 8월 7일부터 16일까지의 과정임’.

재판장: 이 내용이 피고인이 말하는 취지와 맞아요?

재판장은 “반성하는 취지가 아닌 것 같다”라는 말을 반복했다. B는 계속되는 재판장의 말에 결국 “자랑하듯이 쓴 것 같다”고 답했다.

재판장: 본인이 쓴 거 맞아요? 무슨 취지로 쓴 거예요?

피고인 B: 자랑하듯이 쓴 것 같습니다.

재판장: 반성하는 거 맞아요? 징역형에 집행유예면 젊은 나이에 중한 처벌인데…이런 글 쓰고.

B는 “(최종 진술을) 끝까지 들어주시면 안 되겠느냐”고 물은 뒤, 다시 종이를 들었다.

피고인 B: 제가 쓴 글을 다시 읽어보니, ‘잘 놀다 왔다고 생각할 수 있겠구나’, ‘조롱한다고 생각할 수 있겠구나’ 싶었습니다. OOO 판사(집행유예 선고한 1심 판사)님께도 죄송합니다. 기사 댓글이 판사님을 욕하는 걸 보니 죄송했습니다. 후회하고 있고, 인터넷 중독과 우울증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죄송합니다.

그제야 재판장은 별다른 말 없이 재판을 마무리했다.

B에 대한 2심 선고는 1월 12일 나온다.

1심 판결(2023년 10월 26일)

1심 재판부는 피고인 B에게 징역 8개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협박과 위계공무집행방해 혐의를 모두 인정했다. 협박 대상은 ‘웹사이트 운영자 및 불상의 이용자들’이다.

피고인 측은 “공무 집행을 방해할 고의가 없었고, 경찰 업무 집행을 현실적으로 크게 방해하지 않았다”고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당시는 경찰력 출동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던 상황”이라며 “예고 글이 경찰관을 오인하게 했고, 허위인 줄 알았으면 하지 않았을 활동을 하게 만들었다”고 판시했다.

1심 재판부: 춘천지법 형사3단독

“1심 선고, 지나치게 가벼워 부당하다”

2024년 1월 12일, 피고인 B의 2심 선고일.

춘천지방법원 101호 법정에는 선고를 받으러 온 피고인이 많았다. B는 다섯 번째 순서였다.

B는 이날도 검은 점퍼를 입고 왔다. B 또래의 방청객과 중년의 방청객이 함께 왔다.

재판장은 “B의 죄책이 가볍지 않다”고 말했다.

재판장: 대한민국을 충격에 빠뜨린 사건이 연쇄적으로 발생해 불안함이 고조된 상황에…

재판장이 ‘살인 예고’를 말하자, 몇몇 방청객이 고개를 들었다. 다른 사건에는 관심 없어 보이던 이들이었다. 재판장은 “범행 이후의 정황도 매우 좋지 않다”고 말했다. 재판장 입에서 ‘교도소 인기남’, ‘도원결의’ 같은 단어도 나왔다.

재판장은 주문을 읽기 시작했다.

재판장: 1심 선고가 지나치게 가벼워서 부당하다고 판단되는 바, 원심판결을 파기한다.

재판장은 ‘지나치게 가벼워서’를 강조했다. 긴장감이 생겼다.

재판장: 피고인을 징역 1년에 처한다.

재판장은 잠시 말을 멈췄다. ‘B가 이대로 법정에서 구속되는 건가’, 생각할 만큼 짧지 않은 순간이었다.

재판장이 이어 말했다.

재판장: 다만, 2년 동안 형의 집행을 유예한다.

형량이 높아졌지만, 같은 집행유예였다. B는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재판장의 일시 정지를 B는 어떻게 느꼈을지, 잠깐이라도 마음이 철렁했을지 알 수 없었다.

지난해 1심 재판부는 B에게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2심 재판부는 여기에 4개월을 더해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특별준수사항’도 추가했다.

재판장: 보호관찰을 받을 것과 200시간의 사회봉사를 명한다.

2024년 1월 12일, 춘천지방법원에서 피고인 B에 대한 선고 공판이 열렸다.


“피고인, 기회는 여러 번 오지 않습니다”

B는 선고를 듣는 내내 가만히 서 있었다. 재판장은 B에게 “특별준수사항을 잘 지켜야 한다”고 말했다. 당부보다는 경고에 가까웠다.

재판장: 집행유예 아시죠. 지금 바로 교도소 보내야 하는데, 건전한 사회인으로 거듭나라고 2년 미루는 거예요. 정신 못 차리고 또다시 경거망동하거나, 보호관찰관 지시에 따르지 않거나, (인터넷 중독)치료 열심히 받지 않으면, 더 이상 국가가 봐줄 수 없습니다.

재판을 마치며, 재판장은 B에게 대답을 받았다.

재판장: 피고인, 기회는 여러 번 오지 않습니다. 건전한 사회인으로 거듭나시길 바랍니다. 알겠죠?

피고인 B: 네.

2심 선고로부터 나흘 뒤, B는 상고장을 냈다.



최윤정 기자 yoon@c-watch.org

  • 2심 재판부
    • 춘천지법 제2형사부
  • 혐의
    • 협박, 위계공무집행방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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